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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월 27일 목요일. 디아블로3의 아시아 서버에도 마침내 신규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의 사전패치인 2.0 패치가 적용되었습니다.

오늘은 세간에서 "2년 간의 오픈 베타 기간이 끝났다!"고도 평가되는, 그리고 많은 용사들을 다시 성역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이른 바 "개념패치"로 불리는 디아블로3 패치 2.0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세부 내용이 적힌 패치노트 전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디아블로3 공식 사이트: 2.0.1 패치가 적용되었습니다.)

 

 

1. 새로운 난이도 구조

일반Normal, 악몽Nightmare, 지옥Hell.

이것은 이전 시리즈인 1편과 2편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던 난이도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난이도는 반드시 이전 단계의 난이도를 "클리어 한 이후에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3편에 와서는 이를 확장한 네 번째 난이도이자 지옥 난이도의 상위 단계인 "불지옥Infernal"이라는 단계를 추가해 이제까지의 난이도 구조를 더욱 곤고히 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구조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반복 플레이의 강제"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숙련도나 강함같은 요소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모두가 똑같이 난이도 숫자만큼 게임 시나리오의 처음과 끝을 반드시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제되는 반복 플레이는,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숫자만큼 늘어나 더 큰 부담을 가중시키기도 했습니다. 단방향으로 진행되는 시나리오 구조의 특성과 게임의 수명을 유지시켜주는 반복 플레이의 유도가 서로 상충해 플레이어에게 좋지 못한 경험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대안을 내놓게 됩니다.

이번 2.0 패치에서는 마치 예전 콘솔 게임들이 가지고 있던 "쉬움, 보통, 어려움"과 같은 난이도 선택 방식처럼, 한 번의 시나리오 플레이를 진행하는 동안 자신의 실력에 맞게 난이도를 더 어렵게, 또는 더 쉽게 조절할 수 있는 방식이 적용됐습니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캐릭터의 레벨이 증가하면 악마들의 레벨도 따라서 증가하는 이른 바 "몬스터 레벨 스케일링Monster Level scaling"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아레나넷ArenaNet의 길드워GuildWars2에서 낮은 레벨의 지역에 입장한 캐릭터의 레벨을 강제로 지역에 맞게 하향 조정하던 것의 반대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레이어가 몇 레벨이던 간에, 악마들과의 레벨은 항상 일정한 간격으로 유지됩니다. 하지만 점점 더 강력한 아이템을 손에 넣게 되면서, 캐릭터는 자신의 레벨을 뛰어 넘는 강함에 도달하게 되고 게임의 난이도는 점차 쉬워질 것입니다.

몬스터들의 강함이 고정되어 있던 이전까지의 난이도 구조에서라면 약해진 몬스터들을 무의미하게 쓰러뜨리면서 자신의 강함에 맞는 적당한 난이도에 도달할 때까지 진행했어야 하지만, 새롭게 개편된 난이도 구조에서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난이도를 높여 도전하면 됩니다.

보통 - 어려움 - 고수 - 달인 - 고행 단계로 구분된 새로운 난이도 구조에서는, 난이도가 높아질 수록 몬스터들이 강해지지만 그만큼 높은 보너스의 혜택도 같이 받게 됩니다. 난이도가 증가함에 따라 경험치와 금화 습득량, 그리고 마법 아이템 획득 확률에 각각 더 많은 보너스를 얻게 되면서 캐릭터가 강해질 수록 성장 속도가 더욱 가속화되는 구조로 개편되었습니다.

(기존의 각 단계에서 적용할 수 있던 악마 강화 단계는, 고행의 단계가 1~6 단계로 제공되는 형태로 변경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레벨의 플레이어가 같은 방에 존재할 경우, 몬스터가 어떤 값의 레벨로 조정되는 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 전리품 2.0

디아블로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악마를 무찔러 캐릭터를 단련시키고 그들이 떨어뜨린 장비를 통해 더욱 강해져, 다시 더 강한 악마를 무찌른다"는 반복순환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리즈마다 비율의 차이는 있었지만) 여기서 캐릭터의 성장을 담당하는 두 축은 능력치와 장비였고, 한계점 까지 성장한 캐릭터의 능력치 이상의 강함에 도달하기 위해 강한 장비를 획득하기 위한 반복 플레이를 "아이템 파밍Item Farming"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있는 상식 수준의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발자 노트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3편에 와서는 "경매장"이라는 새로운 수익 모델 덕분에 시리즈의 전통이었던 "악마 사냥을 통한 아이템 획득"이라는 기본 순환 구조가 파괴되었고, 악마와 싸우는 대신 경매장에서 원하는 옵션의 물품이 등록되길 기다리며 새로고침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용사들을 원치 않던 개발사는 "경매장 폐쇄"라는 강경책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디아블로3 공식 사이트: 경매장이 곧 닫힐 예정입니다.)

기존의 아이템 드랍 구조에서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난이도와 막(Act)이라는 컨텐츠의 강도에 따라 그 종류와 부여되는 옵션들이 무작위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캐릭터에게 필요한 아이템이 떨어질 확률도 낮았을 뿐더러, 자신에게 맞는 아이템이 떨어졌다고 해도 부여된 옵션이 자신에게 유용할 확률은 훨씬 더 희박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는 필요할 지도 모를 아이템들을 서로 교환하는 일이 이전 시리즈부터 성행하게 됐습니다. 혼자 구하는 것보다, 여럿이 구하는 쪽이 훨씬 확률이 높은 것은 간단한 계산이니까요.

하지만 개발팀 입장에서는, 이러한 아이템의 거래라는 행위가 사실상 자신들의 의도대로 전체 플레이어들에게 제공되는 아이템들의 품질과 양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배틀넷Battle.net이라는 온라인 공간과 싱글 캠페인의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아이템 가치가 큰 격차를 보이게 됐습니다.

따라서 2편과 3편의 패치 내용(지옥문 장치)에서는 거래되는 아이템들보다 상위 등급의 아이템들은 거래가 불가능한 설정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 기준선 이상에서의 제어만 가능했을 뿐이었습니다.

경매장의 폐쇄에 앞서, 이번 2.0 패치에서는 금화, 제작 재료, 전설 등급 이상의 아이템에 대해 추가적으로 플레이어 간 거래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그야말로 본격적인 "자급자족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전리품 2.0"은 이러한 거래 제한 정책에 대한 돌파구 입니다.

전리품 2.0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떨어지는 아이템이 자신에게 유용한 아이템일 확률이 늘어난다.

- 특정 직업 전용 아이템의 경우, 불필요한 옵션이 부여되지 않는다.

- 이와 같은 맞춤형 아이템 습득 확률은, 대장장이를 통한 아이템 제작에도 적용된다.

즉, "타인의 도움 없이도 자신에게 필요한 장비를 더 잘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패치"가 바로 전리품 2.0 입니다.

경매장도 금화나 아이템 거래도 불가능해져 원하는 아이템을 얻기 어려워진 플레이어들에게, 직접 사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전투보다 경매에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기형적인 플레이 패턴을 정상적으로 돌려놓는 데 크게 일조합니다.

 

 

3. 정복자 2.0

 

이번 3편에서는 본편 최고 레벨인 60레벨에 도달한 플레이어들이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성장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써 "정복자 레벨"이라는 시스템을 적용했었습니다.

(디아블로3 공식 사이트: 정복자 시스템을 소개합니다.)

정복자 레벨은 최대 100레벨까지 성장 가능한 새로운 방식의 레벨이며,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직업별 주 스탯과 골드 획득량, 마법 아이템 획득 확률이 증가하는 마치 "옵션 증가"에 가까운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업 주 스탯과 마법 아이템 획득 확률이라는 옵션 자체가 주는 메리트가 컸기 때문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지겨움을 무릅쓰고 정복자 레벨 올리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추측되는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확장팩에서 최고 레벨 상한이 상향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이를 보상해주면서 적용시킬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당시의 정복자 시스템 기준에서 추측해볼 수 있었던 가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최고 레벨이 상향되도 정복자 레벨이 유지될 것인가?

- 최고 레벨이 상향되면, 정복자 레벨은 60 레벨부터 적용되는가 아니면 70 레벨 부터인가?

- 이미 누적된 정복자 레벨은 60 레벨부터 적용되지만 70 레벨부터 다시 증가된다면, 그 동안에 적용되는 아이템 습득 확률 옵션의 차이로 플레이어 간 장비 격차가 벌어지지 않을까?

- 만약 60 레벨에서 정복자 100 레벨 달성 이후에 61 레벨이 될 수 있다면, 플레이어 간 격차가 말도 안되게 벌어지지 않을까?

- 반대로 정복자 레벨을 없애버린다면, 그간 쌓아온 정복자 레벨은 무엇으로 보상될 것인가?

 

하지만 이번 2.0 패치에서 정복자 시스템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구조로 완전히 바뀌면서 위의 의문들을 한 번에 해소했습니다.

- 정복자 레벨은 포인트로 환산되어 계정 전체의 캐릭터에 공유된다. (스탠다드 / 하드코어 모드는 분리되어 각각의 정복자 레벨 적용)

- 기존에 제공되던 옵션 대신, 새로운 포인트가 부여된다. (일반/공격/방어/지원이라는 네 분류에 각각 순서대로 1 포인트씩 부여)

즉, 정복자 레벨이라는 것은 캐릭터의 레벨이 아닌, "계정 전체에 적용되는 누적 성장 포인트"와 같은 개념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정복자 2.0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새로운 캐릭터를 키우기 편하다"는 점이 됩니다. 내 계정의 정복자 레벨이 100 레벨이라면,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 1 레벨의 다른 직업 캐릭터가 생성되도 마찬가지로 100 포인트의 정복자 포인트를 투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설명드린 새롭게 개편된 난이도 구조와 더해져 더욱 빠른 성장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4. 새로운 강화 효과

이전까지 사용되던 전투 흐름 유도 장치로는 "네팔렘의 용맹"이라는 용사 또는 희귀 악마를 처치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버프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디아블로3 공식 사이트: [정보] 강화 효과 - 네팔렘의 용맹)

60 레벨의 캐릭터가 용사 또는 희귀 악마를 처치하면, 골드 획득량과 마법 아이템 획득 확률이 증가하는 30 분 짜리 버프를 받게 되고 버프가 지속되는 동안 다른 용사/희귀 악마를 처치하면 다시 30 분으로 남은 시간이 초기화 되면서 최대 다섯 번까지 중첩되는 시스템 이었습니다. 링크에도 적혀있다시피 특정 구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개발팀의 의도가 잘 느껴지는 시스템이긴 했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버프가 해제되는 조건들 중에 "스킬 또는 룬을 변경하면 해제"되는 조건 때문에 상황에 맞는 유동적인 스킬 세트 운용이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일반 필드를 돌아다니면서 용사/희귀 등급의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네팔렘 5중첩을 쌓는 동안에는 다 수의 몬스터와 상대하기에 적합하면서 빠른 이동에 효율적인 스킬 세트를 운용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5중첩을 쌓은 이후에 보스 몬스터에게 파밍하러 갈 때에는 다시 보스전에 적합한 스킬 세트로 바꿀 수가 없다는 점은 제법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번 2.0 패치에서는 네팔렘의 용맹 버프를 삭제하는 대신, 이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두 가지 강화 효과를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1) 투영의 웅덩이

 

성역을 돌아다니다보면 기존의 생명력/마나 회복샘과는 다른 황금빛의 웅덩이를 발견하게 되며, 그 효과는 무려 "경험치 획득 보너스 +25%"입니다. 효과가 적용되는 범위는 현재 레벨 업까지 필요한 경험치 량의 10%.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효과는 "캐릭터가 죽으면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생존에 대한 긴장감을 높여가면서 경험치 혜택을 위해 조심 조심 전투를 진행해야 합니다.

 

2) 힘의 구슬과 네팔렘의 영광

 

성역의 악마들을 처치하다보면 기존의 피의 구슬과는 다른 황금빛의 구슬을 발견하게 됩니다. 힘의 구슬이라는 이름의 이 황금 구슬을 먹게 되면 "네팔렘의 영광"이라는 버프가 1 분간 적용이 되며, 확률적으로 발동되는 강력한 추가 피해와 이동 속도 증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힘의 구슬을 습득하는 것으로 최대 3중첩이 가능한 것 뿐 아니라, "피의 구슬을 먹으면 약간의 버프 시간 연장"이 된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네팔렘의 영광 버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몬스터를 사냥해 힘의 구슬 또는 피의 구슬을 획득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효과 덕분에 기존에는 크게 매력이 없었던 "몬스터 처치 시 피의 구슬 생성 확률 +n%"라는 옵션이 네팔렘의 영광 버프 유지 시간을 늘려주는 매력적인 옵션으로 가치가 상승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빠른 전투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달려가야 하는 네팔렘의 영광과, 반대로 경험치 보너스를 유지하기 위해 죽지 않으려고 천천히 진행하게 되는 투영의 웅덩이 덕분에, 플레이어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급진적인 플레이와 보수적인 플레이 사이에서 내적 갈등이 유발되게 됩니다. 따라서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현재의 전투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끊임없이 제공해줍니다.

 

 

5. 완전한 순환 구조

지금까지 살펴본 2.0 패치의 큰 부분들의 특징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1) 새로운 강화 효과, 이벤트 요소(저주받은 궤짝/신단), 악마들의 능력 등을 통해 전투와 생존 자체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2) 난이도 구조의 개편으로 억지스럽던 반복 플레이 경험을 개선한다.

3) 정복자 2.0으로 새로운 캐릭터 육성을 전폭 지원한다.

4) 아이템 2.0으로 아이템 획득이라는 반복 플레이의 목적을 명확히 한다.

그리고 다시 이 특징들을 종합해볼 때 내릴 수 있는 판단은,

"2.0 패치는 본격 하드코어 모드 권장 패치다."라는 결론입니다.

 

위의 각 특징들이 어떻게 하드코어 모드와 연결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1) 새로운 피처들을 통한 전투와 생존에 집중 유도"는 이미 말 그대로 "사망은 캐릭터의 영원한 종결"을 의미하는 하드코어 모드에서 반드시 필요한 지침과도 같습니다. 죽어봤자 수리비 정도가 필요할 뿐인 기존의 스탠다드 모드에서는 미시적인 플레이에 집중하기보다, 일정 시간동안 얼마나 성장했고 어떤 아이템들을 습득해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냈는 지에 대한 거시적인 플레이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요소들을 통해 미시적인 플레이에 보다 집중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하드코어 모드 진입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출 수 있게 지원해줍니다.

"2) 난이도 개편으로 반복 플레이 경험 개선"과 "3) 정복자 2.0을 통한 새 캐릭터 육성 지원"은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 두 요소의 조합을 통해 "반복적인 새 캐릭터 육성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스킬 세트와 정복자 포인트의 초기화가 용이하고 대부분의 아이템이 캐릭터 귀속이 아닌 계정 귀속 방식이 적용된 3편의 구조 상, 스탠다드 모드에서는 같은 직업의 캐릭터를 추가로 육성할 이유가 전무합니다. 하지만 하드코어 모드에서는 지속적인 캐릭터의 사망으로 인해 신규 캐릭터의 생성과 플레이가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고, 따라서 스탠다드의 "해보지 않은 직업 육성"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난이도2.0 x 정복자2.0의 시너지 효과에 혜택을 받게 됩니다.

정복자 레벨이 올라있는 상태에서 신규 캐릭터를 키우면 정복자 포인트를 투자해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으므로 더욱 높은 난이도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높은 난이도로 플레이하면 경험치 부스트를 적용받게 됩니다. 그리고 정복자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더 높은 난이도를 수행할 수 있게 되므로, 신규 캐릭터를 육성하는 데 드는 시간은 점점 단축되게 됩니다.

그리고 정복자 2.0의 핵심적인 기능 중 하나인 "정복자 레벨을 캐릭터 정보가 아닌 계정 정보로 분리"한 것의 효과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보겠습니다. 과거에는 정복자 100 레벨의 캐릭터 사망이 그야말로 모든 것의 상실과도 같은 치명적인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정복자 100 레벨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새롭게 1 레벨의 캐릭터를 키우는 데에 여전히 효과적인 "유효한 힘의 대물림"이 가능해 하드코어 플레이어들의 상실감 완충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4) 아이템 2.0을 통한 아이템 파밍 강화"는 1차적으로는 앞서 설명한대로 직접 전투를 통한 아이템 획득을 유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위에서 설명하지 않은 이 기능 덕분에 보다 하드코어 플레이를 기대한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더 이상 고정된 수치의 옵션을 갖지 않는다.

- 아이템 툴팁이 표시될 때 Ctrl 키를 누르면 능력치의 최소-최대값 범위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전설 아이템을 자꾸 자꾸 떨어뜨려 아이템 획득에 대한 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한편, 이와 같이 "전설 등급의 아이템 역시 반복적으로 여러 번에 걸쳐 최고 단계의 아이템을 습득"하도록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무려 내가 습득한 장비가 현재 어느 정도의 옵션 수치를 가지고 있는 지, Ctrl 키를 눌러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부분에서 그야말로 플레이어들을 어떻게든 지속적으로 악마와의 전장으로 몰아넣으려는 개발팀의 강력한 의지마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어째서 개발팀은 이토록 플레이어들에게 하드코어 모드를 플레이하도록 권장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그 대답을 "완전한 순환 구조"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미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하드코어 모드에서 캐릭터의 사망은 모든 것의 소멸입니다. 캐릭터를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지니고 있던 착용 장비와 인벤토리 소지품까지 모두 소멸됩니다. 2편에서 처음 등장한 이 하드코어 모드는, 그래도 당시에는 시체 루팅이라는 시스템 덕분에 다른 하드코어 캐릭터가 사망한 캐릭터의 소지품을 주웠다가 새로 만든 캐릭터에게 마치 "선조의 유품"처럼 전달해주는 플레이가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3편의 하드코어 모드는 시체 루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플레이어가 사망할 때 1편처럼 바닥에 소지품을 흩뿌리지도 않습니다. 고스란히 악마의 차원문 너머 블리자드 사의 서버 소스 어딘가로 소멸되어 버릴 뿐입니다. 그럼 이러한 소멸은 게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스탠다드 모드에서는 아무리 죽어도 캐릭터가 사라지지 않고, 아이템 역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 번 플레이어가 습득한, 그러니까 게임의 입장에서 한 번 생성된 아이템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강력한 용사들이 최고 레벨의 장비를 손에 넣고 나면, 디아블로3라는 게임은 더 이상 플레이할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Game Over가 찾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개발팀은 자신들의 게임을 즐겨주는 플레이어가 언제까지나 성역에 남아있어주길 바랄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더 높은 아이템을 만들어 넣어, 그들이 계속해서 올라갈 어떤 지점을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앞서 말한대로 "한 번 생성된 아이템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부분 때문에 개발팀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넣는 것과 그로 인해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이 그 아래에 쌓여 썩어가는 것을 슬퍼할 겁니다.

한 편 하드코어 모드에서는, 생성된 아이템 또한 캐릭터의 사망과 함께 소멸합니다. 스탠다드 모드에는 존재하지 않던, 생성과 파괴라는 순환 구조가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더 높은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서만 아이템을 분해하게 되는 스탠다드의 제한적인 아이템 소멸과는 달리, 하드코어 모드에서는 주력으로 사용하는 강력한 아이템들이 캐릭터와 함께 소멸합니다. 그 결과는? 무조건 더 좋은 아이템만이 유일한 필요 장비가 되는, 마치 끝나지 않는 레이스 같은 스탠다드 모드와는 달리, 캐릭터의 성장과 함께 모든 레벨 구간의 아이템들이 꾸준히 필요하게 됩니다. 실제로 60레벨의 대중화된 장비 이하와 그 이상이 엄청난 가격 차이를 보였던 스탠다드의 경매장 시세와는 달리, 하드코어 모드의 아이템 시세는 낮은 레벨의 장비부터 최고 레벨의 장비까지 고르게 시세가 분포되어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경제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논리입니다. 장기적으로 플레이어와 개발팀이 오랫동안 함께하기 위해서는, 개발팀 입장에서 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하드코어 모드를 즐겨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하드코어 모드는, 말 그대로 자신이 애착을 갖고 플레이했던 캐릭터가 "사망"이라는 엄청난 상태를 맞이할 수 있는 모드입니다. 따라서 모든 로그라이크 게임들이 그러하듯,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험을 자주 겪게 되며 그 것이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에게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경험일 것이라는 것도 자명합니다. 그래서 이 같은 플레이어 부담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사망 후에도 유지되는 강함의 등장, 그리고 다시 새로운 캐릭터를 키울 때 그 강함을 통해 더욱 빠른 육성 지원과 같은 적극적인 장치들을 대거 배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곧 발매될 예정인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에서 적용될 "모험 모드"와 모든 것이 랜덤하게 적용되는 "네팔렘의 차원 균열"같은 무한 컨텐츠 등의 라인업을 보면, 개발팀의 개발 비용을 최소화 한 상태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반복 플레이의 유도로 이 같은 순환 구조에 대한 의도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복 플레이가 적용될 때, 계속해서 재화가 누적되는 스탠다드보다는,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가 반복되는 선순환 구조의 하드코어 모드가 장기적으로 더 유리할 것이라고 쉽게 추측해볼 수도 있습니다.

 

 

6. 아쉬운 점

하지만 위와 같은 완전한 순환 구조를 목적으로 한 짜임새 있는 패치 구성에는, 모든 것들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전체적인 패치 방향이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각각 개인 플레이 위주로 진행하면서 힘을 합치는 "객체 지향적 협동 플레이(가칭)"에 있다고 하더라도, 배틀넷이라는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군집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부분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개발팀에서도 이같은 군중 속의 고립감이 문제시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이것의 해소 차원에서 클랜과 커뮤니티 시스템을 2.0 패치에서 제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애석하게도 이는 체감상 "단순한 채팅 채널의 추가" 정도의 영향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물론 기능상으로는 클랜명이 캐릭터명과 함께 표시되며, 커뮤니티의 경우에는 인 게임 게시판을 지원하기도 합니다만 그다지 체감이 되는 수준의 커뮤니티 구성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붙잡아두는 데에는 사람만큼 좋은 컨텐츠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이용한 컨텐츠로는 "협동"과 "경쟁"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3편에서는, 난투장이라는 알 수 없는 컨텐츠로 제대로 된 PvP 경쟁 컨텐츠를 제공하지 못했던 데 이어, 클랜과 커뮤니티라는 알 수 없는 인터페이스의 추가로 제대로 된 협동 컨텐츠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어차피 배틀넷 2.0이 적용된 스타크래프트2 부터 싱글 플레이든 멀티 플레이든 온라인 접속이 강제되는 현 시점에서, 디아블로3의 접속 이후 화면은 지금의 쓸쓸한 영웅 혼자 성역의 어딘가에 황망하게 서 있는 화면이 아닌, "네팔렘의 전진 기지"와 같은 이름의 채팅 로비로 이동되는 것이 더 적절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었을까요?

굳이 비싼 제작 비용을 들여 3D 모델링 된 수 십, 수 백 명의 영웅 캐릭터가 화면에 돌아다니지도, 아예 나타나지도 않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분위기의 아트워크를 활용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리스트만으로 충분히 효과적인 전진 기지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진 기지의 한 켠에는 클랜원들을 위한 클랜 캠프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다시 클랜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인스턴스하게 존재해도 좋을 겁니다.

어떤 모양인지 잘 떠오르질 않는다면, 아래 그림을 통해 어떤 모양새일지 대강의 그림을 떠올려보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 4Leaf Browser의 화면입니다.

 

4Leaf Browser의 켈티카의 거리 아트워크가 디아블로3의 각종 월페이퍼와 같은 톤으로 바뀌기만 해도 충분히 의도가 전달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3 편의 대기 화면 구성은, 싱글 캠페인과 배틀넷 로비를 무리하게 한 곳으로 합치다가 벌어진 일종의 인터페이스 표현의 한계같은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아쉬운 부분은, 개인과 개인들의 플레이가 서로 하나의 목표로 귀결되는 "공동의 목표"와 같은 컨텐츠가 없다는 점입니다. 비록 디아블로라는 IP가 본래 각각의 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인스턴스한 플레이에 기반한다고 해도, 경매장과 같은 거대한 연결고리를 계획했던 프로젝트이니만큼 보다 직접적으로 각각의 개인들을 묶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성역 침식도"같은 시스템을 고안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PS2 베르세르크 성마전기의 장에서 나오는 "마물잔존율"이나, PC MMOFPS 파이어폴에서 초즌Chosen들의 "인커젼", "인베이젼"에 침략당하는 플레이어들의 영역처럼 악마들에게 성역이 침공당한 정도를 수치와 그래프를 통해 보여준다.

- "성역 침식도"는 개개인에게 별도로 제공되는 정보가 아닌, 서버 단위의 공통 정보이다. 즉, 같은 서버의 모든 플레이어는 서로 똑같은 성역 침식도를 공유한다.

- "성역 침식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수치가 증가한다. 침식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플레이어들이 악마를 처치해야 한다.

- "성역 침식도"의 수치가 낮을 수록, 매직 아이템 발견 확률 옵션 수치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모든 플레이어들은 침식도를 낮춘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게임에 임한다.

- 영원히 0이 되지 않는 네버엔딩 구조로 침식도를 구성하거나, 또는 주기별로 리셋되며 0으로 만들면 클리어되고 각각의 플레이어마다 기여도에 따른 차등 보상을 적용받는 세션제로도 구성해볼 수 있다.

이처럼 공통의 목표를 보여줌으로써 플레이어들은 각각의 플레이가 거시적으로 어떤 영향을 세계에 끼치는 지 파악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협력과 경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새로운 래더 시스템은 성역 침식도와 함께..!

 

전체적으로 상당히 짜임새있는 디아블로3의 이번 2.0 패치는 개발팀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플레이어들이 지난 시간 동안 요구해오던 내용들의 수용 안에서 적당한 지점에 잘 자리잡은 듯한 탄탄한 업데이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월 말에 있을 "영혼을 거두는 자" 공개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디아블로3에 관심을 갖고 돌아오게 만드는 아주 성공적인 업데이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다만 말미에 적었던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들까지 조속한 시일 내에 더 멋진 모습으로 반영되서, 진정한 완전체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래더와 투기장의 조속한 패치를 바라며, 두서없는 패치 살펴보기를 마치겠습니다.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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