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GDF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GDF 링크: http://gdf.inven.co.kr/t/p3p-vs-p4g/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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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GS(Tokyo Game Show, 동경게임쇼)를 겨냥한 듯한 한 티저 무비가 공개되어 많은 게임 팬들을 설레게 했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페르소나5" 였습니다.

 

 

게이머들이라면 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어느덧 다섯 번째 편이 개발중인 이 페르소나 시리즈는 아틀러스 사의 유명 RPG인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같은 작품입니다. 진여신전생은 꽤 무거운 주제와 배경으로 심도 있는 턴제 전투와 악마 수집을 기반한 정통 JRPG(스토리를 따라 진행하는 일본식 RPG) 장르입니다. 여기서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전투와 수집 시스템을 승계하고 밝은 배경과 동성 또는 이성의 동료들 사이의 감정선에 주목하도록 만든 작품이 바로 페르소나 시리즈 입니다.

저는 본편과 페르소나 시리즈 중에서 "진여신전생3 녹턴(이하 녹턴)", "페르소나3 포터블(이하 P3P)", "페르소나4 더 골든(이하 P4G)"의 세 작품을 플레이했으며 이 중 녹턴은 이런 저런 이유들로 클리어하지 못했지만 P3P와 P4G는 노멀 클리어까지는 달성했습니다. 그 중 P3P에서 P4G로 넘어가면서 변경된 게임 디자인 요소들이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페르소나 신작이 공개도 되었으니 이참에 그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해볼까 합니다.

 

 

 

 

 

※ 덧붙이기: 이 글은 페르소나라는 단일 타이틀에 대한 디자인 또는 재미 유발 부분에 대한 분석이 아닌 P3P와 P4G라는 두 작품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비교를 다룰 예정입니다. 따라서 페르소나가 어떤 게임인 지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remarkablue 님의 블로그 글 "[PSP] 페르소나 3 포터블(http://blog.naver.com/bfdan/40107539990)" 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PS2판 페르소나3와 PSP판 페르소나3포터블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한 부분도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 진여신전생과 페르소나

 

앞서 소개하는 부분에서 페르소나 시리즈는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승계 작품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뿌리부터 정리하는 차원에서 게임 디자인 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조금만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계승된 부분입니다. 시스템 상으로는 전투 규칙 전반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으며 컨텐츠 상으로는 등장하는 악마(몬스터 또는 동료)와 PC 또는 악마가 사용하는 스킬들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페르소나를 구성하는 커다란 두 요소가 전투와 커뮤니티라는 것을 감안할 때, 전투에 해당하는 요소들은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과 다른 부분은,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들입니다. 심지어 장르마저 다릅니다. 거시적으로 RPG라고 묶을 수도 있겠지만 페르소나는 RPG라고 보기도 연애시뮬레이션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중도적인 작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2. 페르소나의 재미

 

그렇다면 페르소나가 추구하는 재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페르소나라는 게임의 핵심은 "게임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청소년기의 불안한 자아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제목부터 페르소나라고 지었듯이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마을에 전학 온 고교생 체험 놀이"라는 주제 자체가 페르소나의 핵심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형식을 빌다"라는 부분을 위해 페르소나가 선택한 게임 요소로는 앞서 언급한 전투와 커뮤니티라는 두 개의 큰 요소가 존재하는데요, 먼저 각각의 요소들은 전투의 경우 턴제 JRPG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커뮤니티의 경우 연애시뮬레이션 장르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어 각 요소들이 모두 심도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의 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는 콜라보레이션이 페르소나라는 게임이 다른 게임들과 차별점을 두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P3P vs P4G: 게임 디자인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페르소나 시리즈의 정체성은 점점 고유한 색을 찾아갔고, 주제와 요소들은 단단해졌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페르소나의 재미를 구현하기 위해 P3P와 P4G는 각각 어떤 방법들을 선택했고 그 둘은 어떻게 다른 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게임 디자인 요소 입니다.

(1) 배경 마을

P3P에서는 전투 공간을 제외하면 모두 2차원 이미지로 된 공간에서 커서 포인터만 옮겨서 돌아다니고 행동을 취합니다. PSP의 아날로그 스틱(?)으로 포인터를 옮길 수 있으며 특정 버튼(아마도 X 버튼이었나)을 누른 채 이동하면 포인터를 아주 빠르게 옮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이미지 영역에 포인터가 위치하면 그에 해당하는 메뉴가 나타나 빠르게 포인터로 이미지를 훑다가도 행동 영역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마을 광장컷이 한 장의 그림으로 표시되고 포인터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화면 모퉁이에 "대화하기(O)" 메뉴가 나타나는 식입니다. 배경 그림은 스크롤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한 화면 안에 표시해야 하는 사이즈의 제약은 없습니다.

반면 P4G에서는 비전투 공간까지 모두 3차원으로 모델링했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이하 PC)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작할 수 없는 단순 연출을 위한 공간까지도 모두 3차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3차원 공간의 퀄리티는 마치 플레이스테이션2(이하 PS2) 시절 초창기에 출시되던 여느 3D 게임들의 배경 수준에 그치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게임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마저 듭니다. PC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서 NPC들의 로밍 등을 통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플레이어에게 현장감을 더 크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나?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의도로 보기엔 오히려 P3P의 방식보다 불필요한 이동 소요 시간도 길어지고 공간감도 오히려 해치는(그림보다 투박한 모델링이라서) 느낌이었기 때문에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근에 remarkablue 님의 리뷰를 보고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본래 PS2의 페르소나3도 P4G처럼 3차원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PSP의 사양에 맞춰 배경을 이미지화했던 것이기 때문에, PSP에서 비타로 기기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본래의 3차원 공간을 그저 되살렸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환경 표현에 있어 정상급 기술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크라이 엔진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그 결과가 P4G와 같다는 건 무척이나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전투 속성의 깊이

본래 P3P에서는 물리 속성이 참격, 타격, 관통의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따른 동료 캐릭터들의 기본 공격 속성도 좀 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고, 악마들과 아군 페르소나들의 내성도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참격과 관통은 무효이며 타격은 반사하는 식으로 설정되기도 했었죠.

그런데 P4G에서는 이같은 물리 속성이 "물리"라는 한 가지 속성으로 통합되었습니다. 분명 전투 요소 간소화라는 좋은 방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전히 P3P처럼 각각의 공격 타입에서는 참격과 타격과 관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는 점입니다. 분명 기술 아이콘은 참격/타격/관통이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 내성 시스템이 "물리무효/물리반사" 등으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아무런 구분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게다가 동료들의 기본 공격 속성에서도 참격/타격/관통이 구분된 것처럼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모두 똑같은 물리계였기 때문에 주된 특징이 상쇄되었고, 이를 기본 스킬 구성을 다르게 가져가는 식의 서브 타입 차별화로 무마하려 했지만 P3P 때와 마찬가지로 "특정 역할에 최적화된 동료"가 존재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는 않았습니다.

(3) 던전의 다양화

P3P의 던전 플레이는 타르타로스라고 불리는, 일반인들에게는 시계탑처럼 보이는 곳 내부를 끝없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스토리 상에서 등장하는 특수한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전투는 타르타로스에서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매번 층에 입장할 때마다 길이 매번 바뀌는 랜덤 던전 생성 방식을 사용하긴 했지만, 전투 공간이 항상 똑같다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단조로운 인상을 주고 쉽게 질리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반 난이도에서 중반 무렵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전투 패턴마저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전투의 지루함은 배가되게 됩니다.

반면에 P4G는 컨텐츠 구성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무척 다양한 테마의 던전을 여러 개로 구성합니다. 마을, 고성, 사우나, 비밀 군사 기지, 레트로 게임 던전(...), 천계(..;), 마계화된 마을(;;;;;) 등으로 무척이나 각양각색입니다. 그리고 P3P와 마찬가지로 각 층에 입장할 때마다 구성이 바뀌는 랜덤 생성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요. 그리고 스토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각 던전의 끝에서는 동료를 만나게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동료의 특징과 맞는 테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납득할만한 명분을 많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게임 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차 다음 단계의 던전이 개방되는 방식으로 컨텐츠 소비를 조절하고 있는데요, P3P의 경우 단일 던전이기 때문에 새로운 던전을 오픈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올라가는 길을 막아두었다가 해당 날짜가 되면 상층부를 단계별로 열어주는 방식으로 조절하고, P4G의 경우는 한 던전을 클리어한 뒤 해당 날짜가 되면 새 던전을 오픈해주는 방식으로 조절합니다. 양쪽 모두 이미 플레이했던 던전을 다시 플레이하는 것은 가능하며, 심지어 퀘스트 등으로 권장하기도 합니다.

(4) 전투의 강제성

P3P에서 동료를 만나는 방식은 전투와 관계 없이 특정한 날짜가 되면 강제 이벤트를 통해 진행됩니다. 스토리를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여유롭게 이벤트를 감상하면 됩니다. 반면에 직접적으로 플레이어가 개입해 자발적으로 동료를 찾아나선다거나 하는 느낌은 덜하게 됩니다. P3P에서 동료를 만나는 건 마치 지나가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일종의 해프닝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투를 해야하는 당위성은 중간 중간 등장하는 허들 같은 이벤트 전투에서 승리하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이며, 이벤트 전투에서 패배하면 Game Over가 됩니다. 이벤트 전투에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PC 파티를 성장시켜두면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큰 압박감 등을 조장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P4G는 마을의 누군가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PC일행이 던전으로 찾아가 동료가 될 인물을 구출해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앞서 던전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던전의 플레이 목적 자체가 새로운 동료의 영입에 있으며 심지어 마감 기한이 있기 때문에 지정된 날까지 동료를 구해내지 못하면 게임 진행이 실패하게 됩니다. 따라서 "언제까지 이걸 해내야만 한다!"라는 조건 자체가 굉장한 압박감으로 작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방학숙제를 주는 모양새가 되어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줍니다. 페르소나는 도입부에서 설명드린대로 전투와 커뮤니티가 게임을 이루는 두 축이기 때문에 여타 고전적인 JRPG처럼 전투에만 모든 노력을 할애할 수 없고, 그 경우 재미가 많이 감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전투의 강도 높은 강제라는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전투 컨텐츠 위주로 플레이하려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을 자주 불러옵니다.

다만 이같은 전투 강제를 위해 추가적으로 조치한 부분이 있다면 피로도 부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3P에서는 하루 동안 전투할 수 있는 권장 시간이 존재합니다. MO 또는 MMO 게임들에서 익히 보아온 피로도 시스템과 무척이나 유사한데요, 그 시간을 넘겨 타르타로스에서 전투를 지속하게 되면 PC가 "피로" 상태에 빠집니다. 피로 상태에 빠진 PC는 피로회복제를 마시지 않는 이상 며칠 동안 아무런 방과 후 이벤트를 플레이할 수 없게 되어 커뮤니티 관리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P4G에서는 오퍼레이터가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알려주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피로도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에 HP/MP 회복제만 충분하다면 처음 입장하자마자 클리어까지 주파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도 이를 활용해 새 던전이 열리면 최단 회수 안에 어떻게든 클리어를 먼저해놓고, 다음 던전이 열릴 때까지 여유롭게 커뮤니티 플레이를 하면서 진행했습니다. 마치 방학 시작과 동시에 숙제를 미리 다 끝내고 마음 편하게 방학 생활을 즐기는 패턴처럼요.

(5) 아이템의 처리

P3P에서는 비교적 무쓸모한 잡템이라는 존재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사용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 아닌 경우, 무기 제련 재료이거나 퀘스트 아이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의 입수는 경찰서에서(..) 주기적으로 새 품목이 나오면 그걸 돈 주고 사서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간소하고 고전적인 아이템 처리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됩니다.

P4G에서는 도무지 어디에 쓰는 지 알 수 없는 무쓸모한 잡템이 대거 등장하게 됐는데요, 이 잡템들의 사용처는 다름 아닌 대장장이에게 주고 레시피를 얻는 것입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시간이 지났다고 상인이 갑자기 "새 물건이 들어왔어!"라면서 팔기 시작하는 대신, 새로운 던전에서 구해온 재료들을 통해 대장장이가 "이 재료라면 이런 걸 만들 수 있어!"라면서 레시피를 열어주는 식입니다. 이 부분이 묘하게 몬스터 헌터의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내 플레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컨텐츠가 추가되는 기분이라 상당히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6) 비동기식 간접 멀티플레이

P4G에서 새롭게 등장한 시스템이며 제목은 임의로 붙인 가칭이고요, 통칭 "헬프기능"으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아틀러스 사의 이전 작품 "캐서린"을 보면, 온라인 연결 시 같은 선택지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 지 통계 그래프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P4G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예를 들면 휴일이라거나, 평일 방과 후 라거나)이 왔을 때 비타의 화면을 터치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순간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 지가 화면에 말풍선으로 표시됩니다. 이는 데몬즈 소울에서 구현한 혈흔과 메시지 같은 방식으로 다른 플레이어와 간접적인 비동기식 멀티플레이와 몹시 흡사한 경험을 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언제 어느 순간에 말풍선을 확인하더라도 "마리와 대화한다"가 1/4 쯤 항상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뭐지 이 마리성애자들은!"하고 생각했었는데, 클리어하고 났더니 초반에 마리 커뮤니티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리라는 신 캐릭터 자체가 플레이어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한 까닭도 분명 있을 테고요.

(7) 부가 컨텐츠

P3P의 부가 컨텐츠는 아르바이트 말고 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요소가 별로 없습니다. 반면에 P4G는 낚시, 곤충채집, 원예활동 등 제법 구색을 갖춘 미니 게임형 부가 컨텐츠들이 존재합니다. P3P에도 존재하던 영화보기와 같은 이벤트성 컨텐츠도 물론 존재하지만, 전투와 성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쓴 커피 마시기(스킬 카드를 얻는 용도)같은 요소도 존재하기 때문에 구석구석 꽤 다양한 컨텐츠가 마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수 차례 돌아다니다보면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씩 추가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요소라고 생각되고요. 추측컨데 PSP와 비타라는 기기 자체의 성능 차이, 그리고 저장 매체의 용량 차이 때문에 비롯된 두 작품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P3P vs P4G: 시나리오

 

시나리오 비중이 높은 게임인 만큼, 다른 게임 디자인 요소와는 별도로 두 작품의 시나리오에 대한 내용을 가급적 스포일링 하지 않는 선에서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페르소나의 사용

P3P에서는 주인공보다도 먼저 페르소나를 구사하는 전문 조직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페르소나 구사 가능자이기만 하면 비교적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인간형 캐릭터로는 PC가 홀로 전투에 참가하고 자기가 가진 다른 악마들을 동료로 소환해서 싸우던 진여신전생 시리즈와 달리 페르소나 시리즈는 시스템상으로 여러 인간형 동료들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며 동료들의 페르소나(진여신전생의 악마와 같은)가 고정되어 있고 교체가 되지 않아 대신 PC 자신이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소지하고 교체하면서 전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복수의 페르소나 사용자"라는 것을 PC가 갖는 다른 동료들과의 차별성이라고 시나리오에서 직접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P3P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4G에서는 주인공이 가장 먼저 페르소나라는 능력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페르소나라는 주제를 좀 더 캐릭터와 밀접하게 연결지어 "내적갈등을 극복한 캐릭터는 페르소나를 얻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P4G의 모든 동료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내적 갈등을 가진 상태로 등장하는데요, 내적 갈등으로 인해 캐릭터별 던전의 테마가 구성되고 그 끝에선 PC 일행의 도움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페르소나를 얻어 새로운 동료가 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동료들의 페르소나 각성이라는 이야기를 좀 더 몰입감 있고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는 점은 P4G의 장점이라고 생각되지만, 반대로 주인공 본인의 페르소나 습득 경로와 복수의 페르소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은 게임 내에서 설명해주지도 않고 동료들이 전혀 언급하지도 않는다는 점은 P3P에 비해 다소 아쉽다고 생각됩니다.

(2) 전투 배경

P3P에서 PC 일행이 전투를 벌이는 배경은 매일 자정 열리는 "시간의 틈"입니다. 시간의 틈이 열리면 페르소나 구사자와 쉐도(적) 그리고 쉐도에게 포획될 시민들만 깨어있는 상태로 돌아다닐 수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민은 시간의 틈이 열릴 때 있던 곳에 세워진 관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간의 틈이 열렸을 때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면 낮이나 저녁에는 사람들이 서 있던 장소에 관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틈에서 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깨어있는 일반 시민은 쉐도에게 사로잡혀 타르타로스(시계탑)에 갇히게 되는데 이 때 붙잡힌 것은 시민의 영혼과 같은 존재고 실제 육체는 시간의 틈이 열렸을 때의 장소에 남아 넋이 나간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이를 "좀비화"라고 부르며 전국적으로 이상한 현상이 확산되는 것을 매스컴에서 기사화 합니다. 사실 시간의 틈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가 편해지는데요, 주인공 일행의 활약을 주변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점이라거나, 주인공 일행이 한참을 전투해도 실제 시간이 흐르지 않아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진 시간차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이 이 설정의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P4G에서 PC 일행이 전투를 벌이는 배경은 브라운관을 통해 입장하는 "TV 속 세계"입니다. 안개가 자주 끼는 시골 마을에서 비오는 날 자정에 TV를 보면 누군가 희미하게 보인다는 괴담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안개낀 날 안테나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일련의 살인 사건이 어떤 연관점이 있다는 전개가 펼쳐지고, 사망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오는 날 심야 TV에 나타난다는 것을 PC 일행이 알아차리면서 PC가 우연히 TV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P3P의 페르소나 구사자들은 선천적으로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설정이 배경에 깔려있었던 데 반해, P4G에서 어떤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들이 TV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사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 대부분 몰라서 안하는 건지가 명쾌하게 설명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PC 일행이 TV 속에 들어간 순간에도 현실 세계의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현실 세계에서는 그 인물이 실종되는 것으로 처리됩니다. 실제로 사건 피해자들 또는 동료가 되는 인물들도 실종 사고가 먼저 벌어진다는 것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TV를 통해 출입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험성 등이 거칠게 다뤄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P4G의 "TV 터널"이라는 개념이 우주 과학에서 "웜홀"로 이어지는 평행 우주의 존재와 거의 흡사한 개념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각각의 TV 브라운관과 연결된 통로가 TV 속 세상 곳곳에 있어서 같은 TV로 들어와야만 같은 장소로 들어올 수 있다는 설정이 꽤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TV라는 소재를 인터페이스 디자인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UI 디자인에 있어서만큼은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부분도 훌륭하지만 네러티브 전달을 충실하게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디자인 요소로 꼽고 싶습니다. 특히 인게임 밖에서 다루는 OST, 특전 영상, 번외 퀴즈 게임 등과 같은 요소들을 본편 게임과 함께 "TV 편성표"로 표현했다는 점이 굉장히 멋지게 느껴집니다.

(3) 결말의 스케일

결말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한 스포일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네요. 그래도 최대한 덜 들춰내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P3P는 타츠미포트 아일랜드라는 특수시설같은 어떤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마치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 "소용돌이"처럼 각각의 요소가 커다란 흐름을 갖고 결말까지 이어지는 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츠미포트 아일랜드라는 배경과 중세로 치면 영주 쯤 될 법한 섬의 대부호 가문과 페르소나의 능력과 쉐도의 정체와 전투의 배경이 되는 타르타로스와 이야기 중후반 부에 동료로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의 존재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스케일로 결말이 짜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우뚝 솟은 시계탑과 자정마다 열리는 타르타로스는 인간의 그릇된 욕심에서 만들어진 바벨탑을 상징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결말 부분에서 연결되게 되고요. 또한 PC와 가까운 주요 동료 캐릭터들에게 결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반전 요소들이 있어 캐릭터와 극의 전개가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P4G에서는 각각의 요소들과 결말로 흐르는 실제 이야기의 흐름과 다소 연결 고리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결과적으로 인류 전체의 욕망을 다뤘던 P3P와는 달리, P4G에서는 어떤 한 인물의 그릇된 가치관과 사사로운 욕망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말부에 가서는 판타지 설정에서 쓰이는 대마왕 같은 절대적인 이계의 존재가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의 연결이 인과 관계를 갖고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원래 벌어질 일이었는데 마침 얘 때문에 지금 일어났다"는 다소 헤프닝에 가까운 전개로 이어지는데요. 반지의 제왕 세계에서 드워프들이 실수로 발록을 깨운 것처럼 인간의 실수로 절대적인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는 P3P의 방식보다는 인과 부분에서 아쉽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를 뒤집는 어떤 반전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A인 줄 알았는데 B인가? B인 줄 알았는데 C인가? 아니면 범인이 누구지? 같은 인물에 대한 반전이 들어있어 사실 반전이라기보다는 탐정물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실제로 동료 중에 "탐정"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스케일과 인과 관계에 있어서는 P4G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대신(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후반부의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엔딩의 분기가 존재합니다. 흔히 말하는 해피 엔딩/베드 엔딩 또는 진 엔딩과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5. 마치며

 

다 써놓고 돌아보니 "본격 P4G 까는 글"처럼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만, 사실 P4G가 재미없다는 게 아니라 P3P를 기대했던 제게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이고 P4G 자체는 정통 페르소나 시리즈의 최신작에 걸맞은 퀄리티와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입니다. 고교 시절의 추억이 있거나 아니면 한국과 일본 만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학원물을 좋아하거나 턴제 전투와 수집을 좋아하는 JRPG의 팬이라면, 분명 많은 분들이 즐겁게 플레이하실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실 P3P에서 P4G로 변화된 가장 큰 흐름은 "캐쥬얼화" 입니다. 이야기의 배경과 전개나 클래식한 전투 요소와 같은 여러모로 어둡고 다소 마이너 또는 매니악할 수 있던 P3P의 것들을 많이 덜어내고 축약하고 밝게 가꾼 모습이 P4G라고 생각됩니다. 매직 더 개더링 시리즈의 깊이 있는 게임 플레이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을 법하게 경량화한 블리자드의 카드 게임 하스스톤과 디자인의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위에 쓰인 표현들 대부분이 객관적인 분석 보다는 제 경험을 추적한 감상적인 표현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은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성향과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둘을 모두 플레이해보지 못한 플레이어들에게 "아 두 게임은 이런 차이가 있구나" 정도의 정보를 줄 수 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혹시라도 아직 플레이 못 해보신 분들께 페르소나 시리즈를 꼭 한 번 플레이 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그럼 모두들, Let's PERSONA!!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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