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World of WarCraft의 스크린샷이며, 글의 내용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게임 제작....
그저 막연하게 동경하던 '게임을 만든다'라는 것이 나의 현실로 다가오게 된지는 1년을 갓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 게임회사의 정규직원이 아니며, 직접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도 아니다.
나는 아직 20대 중반의 파견직 근로자일 뿐이며, 흔히 QA라고 불리는 품질관리팀 소속의 한 사원일 뿐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품질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타이틀을 내가 직접 개발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아직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아마 지금 나와 함께 이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많은 분들도 처음에는 분명 같은 꿈을 안고 입사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만들어보고 싶다."
물론 나 또한 내 인생의 8할을 잠식했던 비디오 게임을 그저 즐기는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창작의욕을 간직한 채 이 계열의 직장에 취업을 감행했다.
뭐, 현실은 언제나 어디서나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댄다.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꿈을 키워나가는 게임이라는 것을 만드는
이곳이라 할지라도 그 굴레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인 듯 하다.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두리뭉실하기만 한 몽상에 그치는걸까.
게임 산업...
그렇다. 사실 지금의 영화나 음악들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한 언터테인먼트들은 하나같이 그 이름 뒤에 '산업'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불리고 있는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자본을 투자자들로부터 넘겨받아 그 돈으로 게임을 제작하고, 다시 게임을 판매(또는 배포)해
그 수익을 제작자와 투자자가 분배한다. 이러한 구조로 인해 제작자들은 투자자들의 이익을 함께 생각해야하므로 더이상 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고집을 부린다거나 하는 일체의 행위에 제약이 따르게 된다.
예를 들면, 잘팔리건 안팔리건 난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겠다!! 라고 한다면 그 제작사는 애초에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자체를 지원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투자자들에겐 게임계 발전을 책임져야할 어떠한 책임이나 의무도 없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원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는, 개발 도중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당초 계획했던 오픈 날짜가 임박하도록 게임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제작사는 투자자의 동의 없이 단지 완성도를 올리기 위해 오픈을 연기할 수 없게 된다. 오픈을 연기한다는 건 결국 개발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이고, 개발시간의 증가는 투자자들이 부담해야 할 투자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지연된 개발기간동안의 투자로 인해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수도" 있지만, 투자자들은 대게 그러한 확률싸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결국 개발자는 덜 만들어진 게임을 당초 약속했던 오픈 날짜에 울며 겨자먹는 식으로 공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장교주님(가수 장기하)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기억에 의존하는 글이므로 정확한 멘트는 아니지만, 대략 내용은 이러했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 가내수공업으로 직접 공씨디를 구워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는데,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한다.
'2580: 투자자본 없이 앨범을 낸다는게 어렵지는 않습니까?'
'장기하: 그렇긴 하지만, 내 돈으로 내 앨범을 만들게 되면, 음악적인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지않습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써 내가 하고 싶은 내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의미입니다.'
.....
비록 나는 아직 일개 파견직일 뿐이고,
근로자수 수백명인 회사의 말단 사원이며,
게임계 입문한지 1년 밖에 안된 신입(?)이지만,
적어도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하고,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져야하며, 게임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대답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가슴엔 아직도 게이머의 열정이 살아있고, 그 열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게임을 만든다는 건,
자신은 먹지도 않을 음식을 단지 팔기 위해 요리를 하는 요리사와 다를 바 없다.
지금 게임제작에 고군분투하는 게임업계 종사자 여러분에게
이제 갓 발을 들여놓은 초짜가 감히 선배님들께 한마디 여쭈어 보려한다.
"자신의 직책이 CEO건, 임원이건, 컨셉 아티스트건, 마케터건, 프로그래밍 엔지니어건 그런 건 중요치 않습니다. 지금 자신의 마음엔 내가 만드는(또는 담당하는) 게임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있습니까?"
아무리 Professional을 지향한다 하더라도,
뜨거운 마음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를 감동시킬 수 없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비록 지금의 내 그림자로는 제작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어울리지도 상상되지도 않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내 게임'의 미래를 그려보고, 실제작자에게 영향력 없는 내 몇마디 의견이라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의 실루엣을 끊임없이 구체화하고 있으며, 게임을 즐기는 열정을 놓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나는 G Maker.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다.
10년이 됐든, 혹은 20년이 됐든..
이 열정이 사그러들지 않는 한, 나는 이 말을 반드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옮겨온 2010년 지금.
아직은 평사원이지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었고
Test Engineer 에서 Test Lead가 되었다.
불과 1년 전의 일이거늘, 이다지도 많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