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최고의 게임은 어떤 게임인가요?", "당신의 인생 게임은?", "추천할만한 게임을 꼽는다면?" 같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데, 그 때마다 "나의 20 년 넘는 게이머 인생에서 어찌 몇 가지 게임만 꼽을 수 있단 말인가!"라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분들이 종종 사용하는 "나만의 GOTY(Game of the year. 올해의 게임)"라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내 인생의 GOTY들은 어떤 게임이 있을지 정리해보면 적어도 해수만큼의 게임은 추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정리를 시작해 보았다.
올해로 이제 우리 나이로 서른 한 살이 됐고, 게이머로서의 삶을 살아온 지도 어느덧 25 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어찌보면 한 게이머 개인의 기록일 수도 있겠지만, 격동의 패러다임 변화를 몸소 겪으며 살아온 20 ~ 21 세기 게이머라는 부분에서 그 어떤 시대의 흐름이나마 캐치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희망도 가져본다.
※ 개인적인 GOTY 이므로, 게임 발매일과 무관하게 플레이한 해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음.
1984 ~ 1988 - (너무 어려서 GOTY 랄만한 게임 경험이 없음. 테트리스나 벽돌깨기 등이 있었으나 워낙 시리즈가 많아 정확한 작품 정보를 찾기 어려움.)
1989 - Wonder Boy , (SEGA)
당시 우리 나이로 6 세.
동네에서 처음으로 이웃집에 패미컴(당시 훼밀리로 불리던 기기)을 구입했을 때, 1942와 함께 구매했던 타이틀 원더보이.
또래 형누나동생들 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까지 모여앉아 열심히 스케이트 보드 타고 점프하고 돌도끼 던지면서 울고 웃었던 게임이다.
"게임 세계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인지하게 된 첫 번째 게임.
1990 - Super Mario Bros. , (Nintendo)
마침내 아버지가 큰 맘먹고 사주신 우리집 패미컴(더이상 옆 집에 가지 않아도 됐다!!)과 함께 구매한 유일의 타이틀.
1UP 버섯 먹기도, 100 코인 먹기도 힘들어서 플레이 횟수도 많지 않았던 시절인데, 어린 나이에 엔딩을 봤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마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라면, 마리오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세계적으로도 손꼽을만큼 적지 않을까?
1991 - Super Mario Bros. 3 , (Nintendo)
셋방 살던 시절에 주인 집에 자주 놀러오던 어떤 형네 식구가 있었는데, 그 형네 아파트에 가면 무수히 많은 패밀리 팩들이 가득 차있었던 그야말로 신천지 파라다이스 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던 아주 놀라운 기억이 있다.
그 중에서도 바로 직전 해까지 나의 GOTY 였던 마리오의 최신작(물론 발매된 1988 년에서 한참이 지나서야 접하긴 했지만)을 그 집 형이 열심히 하고 있어서, 구경도 하고 가끔 조이패드 넘겨받고 직접 플레이도 하면서, 둘이 합심해 몇 주에 걸쳐 엔딩까지 달려갔던(주말마다 놀러갔는데 세이브가 안돼 매번 처음부터 해야 했기에...) 엄청난 경험의 게임.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너구리 비행과 돌부처 변신, 그리고 "마법의 피리"가 아닐까?
1992 - SONIC the hadgehog , (SEGA)
아버지께서 또다시 선물로 국내판 삼성 슈퍼 겜보이(정식명칭 메가드라이브)를 사주셨고, 동네 친구와 100 in 1 같은 미니 게임 모음집 같은 것만 즐기다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바람돌이 소닉 1편을 플레이해보게 됐다.
일단 미니 게임 모음집에서는 볼 수 없던 엄청난 퀄리티와 볼륨. 그리고 "스핀 대쉬(방향키를 아래로 누르고 점프를 눌러 제자리에서 피잉~ 피이잉~ 하고 돌다가 방향키를 놓으면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기술)"를 이용한 엄청난 속도감...!!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후로도 마리오 이외엔 딱히 엔딩을 본 것이 없을 정도의 "고전 플랫포머 게임의 난이도" 덕분에 엔딩도 못 보고 중단하긴 했지만(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서 아버지가 망치로 겜보이를 파괴하셔서 더는 소닉을 즐길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연습장에 소닉 낙서를 그릴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겨져 있다.
1993 - Street Fighter 2 , (CAPCOM)
"아도겐"으로 대표되는 스트리트 파이터 2. 이 무렵 초등학교 3 학년이던 나는 1 학기는 서울에서 보내고, 여름 방학에 시골로 이사를 하게 되서 2 학기부터는 시골에서 보내게 됐다. 시골에서 딱히 할 것이 없어 난처해 하던 차에, 면 소재지에 딱 하나 있는 오락실에 이사오기 전 서울에서도 본 적이 있던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기뻤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의 용돈(규칙적인 용돈은 없었지만, 이런 저런 것들을 하고 남는 잔돈)으로는 일 주일에 한 두 번 해볼까 말까 했지만, 그래도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오락실에 들러서 친구나 형들의 플레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갤러리(관전자) 성향도, 어쩌면 이 무렵부터 형성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994 - 금광을 찾아서(Lost Dutchman Mine) , (Magnetic Images)
이 해에 처음 이사갔던 시골보다 더더욱 산골로 이사를 가게 됐고, 더더욱 놀 것이 없어진 나를 위해 아버지가 큰 마음을 먹고 PC(586과 진배없다는 세일즈맨에게 속아서 구매했던 486-DX2)를 사주셨다. 그 때에는 하드 디스크에 이런 저런 데모 게임이나 불법 복제 게임들을 깔아주던 것이 일종의 서비스와 같던 시절이라, 그 안에 깔려있던 각종 게임들을 하나씩 해보던 차에 우연찮게 발견한 두 게임이 바로 고인돌 2와 금광을 찾아서 였다.
94년의 GOTY로 그 두 게임 중에 어떤 걸 선정할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역시 현대 MMORPG의 거의 모든 요소를 컨텐츠로 소화해내고 있는 불세출의 역작, 금광을 찾아서로 선정하기로 했다.
게임의 기본이 되는 채광과 갱도, 그리고 온도와 의복의 영향, 강도와 현상금, 상태이상(질병, 상처)과 치료, 탈 것과 인벤토리의 확장, 요리와 겜블 등의 다양한 시스템/컨텐츠 들 뿐만 아니라, 바로 "모험" 그 자체를 당시의 기술로 온전하게 구현해 낸 것이 충격 그 자체였다.
아직도 "당신에게 역대 최고의 게임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애정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1995 - 동급생(同級生) , (Elf)
Princess Maker 2 , (GAINAX)
아마도 20 세기를 살아온 소년들에게는 너무도 친숙한 제목일 '동급생'과 '프린세스 메이커'. 나 또한 이 역작들의 수혜를 받고 자라났다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며 살고 있다.
동급생의 경우는 태어나자마자 처음 본 것을 부모라고 여긴다는 새끼 오리의 각인과 비슷하게, 더욱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다음 작품 동급생2 편이나 에로게와 RPG의 융합을 꾀했던 드래곤나이트 시리즈보다도, 첫 경험과도 같았던 동급생 1편이 유독 머릿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연애를 게임으로 배운 세대라면, 아마도 성장기의 어느 해인가에는 이 게임이 GOTY로 꼽히지 않을까?
게임의 주인공(메인 캐릭터의 의미로)은 여성, 그리고 플레이어 자신의 아바타에 해당하는 인물은 남성인 점은 같지만, 동급생과 아주 많이 다르면서 어느 부분에선가는 비슷할 수도 있는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육성 시뮬레이션의 시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경험해 본 최초의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인 것은 사실이었다. 인물의 모든 능력과 성향들을 데이터화 하고, 스케쥴을 수행하면서 그 파라메터들을 변동할 수 있다는 "인생을 게임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일깨워준 인생 게임 중 하나.
아마 프린세스 메이커와 영화 매트릭스가 있었기에, 지금의 게임 디자이너로서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강하게 믿고 있다.
여담이지만, 당시에는 동급생을 통해 분할 압축 기술을, 그리고 프린세스 메이커 2를 통해 메모리 캐싱 기술을 익히는 것이 소년들 사이에서는 정설로 여겨졌다. 본인도 실제로 Autoexec.bat, Config.sys 등의 부트매니저를 에디트해 뜻도 모르는 HIGH 나 LH를 써넣고, 도스 프롬프트에서 MEM.exe를 실행시켜 프린세스 메이커가 실행될 수 있는 여유 메모리가 확보됐는지를 체크하곤 했었다. 당시에 비슷한 이유로, MSCDEX 라는 CD-ROM 관리 프로그램의 존재도 알게 됐었고.. (그걸 꺼야 메모리가 대폭 확보됐기 때문.)
1996 - The King of Fighters 96' , (SNK)
Dungeons & Dragons 2; Shadow over mystara , (CAPCOM)
초중고등학생 시절, 아케이드 센터(오락실)를 빼놓고는 게임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뻔질나게 드나들기도 했고 용돈도 없는 시절에 어떻게든 잔돈을 만들어서 열심히도 돈을 부었던 것 같다. 스트리트 파이터나 월드 히어로즈, 또는 파이널 파이트로 시작한 오락실의 세계에서 단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격투게임 올스타전" 같은 컨셉의 킹 오브 파이터즈, 그리고 D&D 2 였다.
용호의 권, 아랑전설과 같은 기존 자사 명작들의 캐릭터들이 총출동함과 동시에, 쿄와 이오리라는 시대의 풍운아 캐릭터를 오리지널 캐릭터로 추가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실사풍에 가까웠던 94~95 편에서 애니메이션 풍으로 크게 화풍을 변신한 96 편을 가장 좋아한다. A+B 버튼을 통한 회피기가 제자리 회피에서 구르기로 변경되었으며(제자리 회피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도 있었다), 기를 별도로 모으지 않고 공격을 통해 저절로 차오르게 만듦으로써 전체적인 게임 패턴이 상당히 스피디하게 변경되었다.
그 시절, 청력과 덕력을 융합해서 음악 작곡 실기 때 일본 팀(쿄, 다이몬, 베니마루 팀)의 메인 테마인 HERO 주 선율을 제출해 A+을 맞았던 건 유머.
D&D 2는 당시 두 대의 기기를 이용해 최대 4 인까지 멀티플레이를 지원한다는 점이 상당히 혁신적이었고, 게다가 정통 판타지의 원류 중 하나인 D&D의 세계관이 CAPCOM의 수려한 2D 그래픽을 통해 구현되어 어린 시절 친척 형들이 플레이하던 드래곤퀘스트를 어깨 너머로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접했던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것을 코 앞에 보여준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숙련 솜씨에 따라 단돈 100 원으로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턱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오락실 주인들에겐 썩 달갑지만은 않던 작품이다.
그 시절, 매직 유저(마법사)는 으레 게임 좀 한다 하는 동네 형들의 차지였고, 나 같은 꼬꼬마들은 형들이 시키는 클레릭(힐 및 저주 검 셔틀), 시프(박스 셔틀)를 플레이할 뿐이었다. 하지만 친구 녀석 중에 유독 뛰어난 지략과 실력을 겸비한 녀석이 과감하게 매직 유저를 잡고 파티를 리드할 수 있는 인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를 위한 힐셔틀(클레릭) 만으로도 묻어묻어 원 코인 클리어를 경험하면서 본의 아니게 전문 클레릭으로 성장하게 됐다.
아마 숙련된 클레릭들이라면 다들 동감하시리라 믿는다.
클레릭이라면 역시, 모닝스타보다 워해머라는 것을...! (효율은 별로지만 손맛이 무척 좋음)
1997 - WarCraft 2; Beyond the Dark Portal , (Blizzard Entertainment)
Command & Conquer: Red Alert , (Westwood Studio)
20 세기 말은 게임 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음악과 같은 각종 문화 컨텐츠의 황금기와 같은 시기였다. 그리고 원 탑 체제가 아닌, 투 탑 라이벌 구도가 자주 만들어지곤 했다. 게임계에서는 아케이드 시장의 CAPCOM 과 SNK가 그랬고, PC 시장에서는 Dune 시리즈로 RTS라는 장르의 창궐을 알린 Westwood 와, 거기에 도전장을 던진 Blizzard 라는 (비교적) 신흥 회사가 그랬다.
대체로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는 양 사의 작품들 중에 어떤 걸 선호하는 지 이야기하면서 편 가르기를 좋아했고, 나 또한 양자택일에는 제법 어려움이 없어 어느 한 쪽을 선호하곤 했지만, 내게 유독 C&C와 워크래프트는 자웅을 겨루기 어려운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두 게임이었다.
전작 Dune의 영향인지 근대전, 근미래전, 약간의 SF 요소가 가미된 실사풍의 C&C 시리즈, 그리고 그와 정 반대의 노선을 탔던 만화풍의 판타지 세계관 기반의 워크래프트. 아직도 어느 한 쪽을 꼽을 수 없을만큼 오래 플레이했고 추억도 많이 간직하고 있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내리지 못했던 선택을 내리자면, 지금에서는 워크래프트2를 꼽게 될 것 같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조금씩 자라난, "실사풍보다는 만화풍"이라는 취향이 크게 한 몫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외에, C&C는 현대전에서 볼 수 있는 양상인 "물량전"이나 그 카운터 전략일 수도 있는 "하이테크 빅 데미지" 같은 운용이 가능했고, 워크래프트는 마치 TRPG를 하는 느낌으로 화면에 직접 표시되는 각종 수치(체력, 공격력, 방어력 등)와 그를 통해 가능한 비교적 섬세한 유닛의 운용이 큰 차이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발견 지역을 가리는 공통적인 정보 제약 속에서도, 블리자드의 RTS들은 전장의 안개(War Fog)라는 한층 강화된 정보 제약 디자인을 적용해 보다 전략적인 정보전을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두 게임의 음악 역시 매우 매력적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두 세 가지 정도의 트랙만 기억에 남는 C&C 시리즈에 비해, 전 트랙의 멜로디라인이 생생히 기억에 남는 워크래프트 쪽이 좀 더 전체적인 어우러짐이 좋았던 건 아닌가 생각해본다.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뭔가 설정이 어려워 모플(모뎀 플레이. 당시에 사용하던 P2P 멀티 플레이 방식)에 실패했던 C&C와 달리, 비교적 간단하게 모플에 성공했던 것도 워크래프트 2 였다.
하지만 이러한 우위의 차이는 상당히 미세한 차이일 뿐이며, 여전히 내게 C&C(또는 레드얼럿)와 워크래프트2는 자웅을 겨루기 어려운 게임들이다.
1998 - Diablo , (Blizzard Entertainment)
중학교 1 학년 때, 우연히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한 게임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영어 이름이라 외우지 못했지만, 어두운 마을과 어두운 교회에서 한 남자가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제법 공포스러운 게임이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중학교 2 학년이 되고 다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친구가 바로 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제목을 물어봤던 것이 바로 이 디아블로 였다.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MMORPG의 밑그림을 구축한 명작.
당시 반장네 집이 PC방을 운용한 덕분에, 친구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등교 전 한 두시간 씩 모여서 TCP/IP가 뭔지도 모를 시절에 PC방에서 멀티플레이를 하고, 어떤 친구가 알아낸 Battle.net 이라는 접속 방법을 통해 세계인들과 만나 같이 게임하곤 했던 경험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큰 자산들 중 하나다.
숫자 키로 물약을 먹고, 마우스 좌클릭 우클릭으로 공격과 마법을 사용한다는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조작 덕분에, 1 년 넘게 이 게임의 마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었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마을 광장의 아이템 복사(돈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멀리 갔다가 돌아오면서 돈을 집어들 때 동시에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집어들어 아이템을 복사하는 방법.)도 그립지만, BoBaFeTt 라는 뜻모를 해킹 프로그램을 어디선가 구해서 친구들끼리 최강의 아이템 세팅으로 경쟁하거나 다른 해커를 잡거나 막아보겠다며 디텍터 프로그램을 쓰거나 하는 식의 간접적인 해킹 경험도 이 때의 것이다.
1999 - Fallout 2 , (Black Isle Studio)
Aliens vs. Predator , (20th Century Fox)
20 세기 말에 세기 말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두 게임을 참 열심히도 즐겼다.
하나는 딱 봐도 세기말인 폴아웃이었고, 또 하나는 외계인과 외계인과 인간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20세기 폭스사(바로 그 영화사가 맞다. 영화사가 직접 제작했던 게임)의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였다.
폴아웃은 당시 영어에 잼병이었던 나와 내 친구 둘(이 세 명이 중고생 시절 내내 붙어다니면서 게임 경험을 공유했다)에겐 도전과도 같은 게임이었다.
일반적으로 당시 일본어나 영어로 된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던 건 글자 모양만 알아도 얼추 진행이 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이 폴아웃은 정말로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게다가 대화 선택도 잘 해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래도 영어를 극복해보고자 사전을 끼고 플레이했던 나와 A는 어렵게 어렵게 대화 위주로 게임을 진행해 나갔고, 공부에 흥미가 없던 B가 이 게임을 클리어하지 못할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B에게서 클리어 소식이 먼저 들려와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게임이 선택의 자유가 엄청난 덕분에, 아예 대화 없이 전투만으로 모든 진행이 극복 가능했던 것.
덕분에 "다시는 B를 무시하지 마라"같은 교훈과 함께, "게임에서의 자유도"라는 엄청난 경험을 얻기도 했다.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는 역시 이 삼인조 중에 비교적 정보를 찾는데 빠삭했던 A가 어디선가 물어온 게임이었다. 이 무렵 버추어 디스크(가상 CD-ROM 에뮬레이터. 지금의 데몬 등과 같은 것)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빈 CD에 게임을 담을 수 있는 복사 기술이 널리 퍼졌었는데, 신문물에 밝았던 A가 이 기술로 제작한 "AvP" 라고 네임펜으로 쓰여진 CD를 나와 B 앞에 가지고 왔다.
그리고 친구네 PC방에서 이 게임을 세 대의 PC에 깔고 각자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골라 방에 입장했는데..
로지컬한 걸 좋아하던 A는 프레데터를,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는 인간승리를 좋아하던 B는 마린을, 그냥 남들 안할 것 같고 멋져 보이는 걸 좋아했던 나는 에일리언을 각각 골랐다.
당시 셋의 증언을 합쳐보자면, A는 학살 게임을, B는 호러 게임을, 나는 레이싱 게임을 즐긴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한 것으로 종합됐다.
제법 많은 구경꾼들까지 대동해가며 몇 개월 정도 즐기던 우리가 MS Gaming Zone 이라는 멀티플레이 포털을 알게된 건 시간이 좀 더 흐른 뒤라 장기적으로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 상당히 강렬한 경험을 즐겼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아직도 그 삼인조가 각자 다른 사람들에게 지난 게임 이야기를 할 때나, 아니면 그 삼인조가 모여서 수다를 떨 때면, 디아블로와 리니지와 함께 꼭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다.
2000 - StarCraft; Brood War , (Blizzard Entertainment)
Ez2Dj , (Amuse World)
당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국민이라면, 해보진 않았어도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스타크래프트'.
당장의 PC방 산업의 폭발적인 양성과 함께, 몇 년 뒤 e-Sports 라는 새로운 산업을 양성하기도 한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진, 그야말로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스타크래프트는, 당시 게임 좀 한다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제 한 캠페인이나 모뎀플레이 이야기가 학교에서 나누는 주된 수다의 소재였고, 하교 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PC방으로 몰려가서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기 위해 줄을 서야 하게 만들었다.
워크래프트 2의 우주 버전으로 스킨만 바꿨던 어느 해 E3 버전의 스타크래프트론 안되겠다고 생각했던 블리자드는, 256 컬러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수준의 하이퀄리티 그래픽으로 무장한 전혀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가진 스타크래프트를 출시했고, 반응은 제법 엄청났다. 하지만 본격적인 붐은 이후 확장팩이었던 브루드 워가 발매된 이후였고, 때마침 시작된 PC방 사업 열풍과 시너지를 내면서 그야말로 "국민 게임"으로 성장하게 됐다.
"너무 메이저해지면 묘하게 흥미가 떨어진다"던 개그맨 유세윤 씨와 비슷한 심리를 가진 나였기에, 당시 게임을 즐기는 기본 소양은 메뉴얼 정독에서 시작하는 거라는 철학을 고수하던 나로선 젤 나가가 뭔지, 오버마인드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스탑 럴커니 무슨 빌드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시점에선 이미 스타크래프트에서 많이 멀어지고 난 뒤였다.
하지만 진성 게이머로 분류되던 당시의 친구들과 나누던 마르지 않는 게임 이야기와, 또래모임 별로 길드를 만들고 길드전 4:4 헌터스 맵을 PC방에서 즐기던, 또는 구경하던 그 어린 날의 열기는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이었기에 GOTY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직전 해였던 99년부터, D.D.R(Dance Dance Revolution)이라는 댄스액션 게임이 아케이드 센터를 강타했었고, 나 또한 퍼포먼스나 스태퍼로 열심히 즐기긴 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일종의 또래 문화에 녹아들기 위한 사교 게임 같은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대신 비슷한 시기에 비트매니아라는 걸출한 건반액션 게임과 비슷한데 디제잉 턴테이블과 페달이라는 물건을 달고 나왔던 국산 게임, Ez2Dj에 훨씬 더 탐닉했던 것 같다.
일반 기판과는 다른 리듬액션 게임들은 별도의 기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용료가 비싸서 판 당 300원 ~ 500원 씩 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실력이 부족하면 첫 번째 판에서 중도에 끝나버린다는 엄청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돈과 시간을 들이부어 즐거움을 만끽했다.
어림잡아 그 당시 한 해에만 Ez2Dj에 쓴 돈이 백 만원은 족히 넘겼을 것 같은데, 실제 계산을 하면서 게임을 했던 건 아니라 정확히는 파악할 수가 없다.
내 기억에, 스트릿 믹스(한 쪽 기판만 사용하는 일반 모드)는 고수들이 넘쳐났던 데다가, 양손잡이라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차별화를 주려는 목적으로 클럽 믹스(양 쪽 기판을 모두 사용하는 모드)에 집착했던 것 같다. 물론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웃음)
2001 - Diablo 2 , (Blizzard Entertainment)
나의 중학시절을 불태웠던 블리자드 작품 중 가장 강렬했던 작품의 후속작이 발매됐다. 게임계의 판도를 다시 한 번 바꿔놓을 '디아블로 2'.
더욱 화려해진 영웅과 몬스터들, 그리고 그들의 스킬들. 전작에선 공용으로 사용되던 마법 체계가 아닌, 지금은 상투적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트리 구조의 스킬 시스템과 클래스별로 차별화된 기술 체계. 좁고 어두운 트리스트람 성당 지하에서의 하룻밤의 악몽을 벗어나, 생츄어리 대륙 전역으로 확산된 악마의 공포를 지우기 위한 영웅들의 사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이었지만 아버지의 지원 덕분에 손쉽게 18금(아마 이 때는 19금이 아니라 18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게임을 구입할 수 있었고, 정품 디스크를 보유한 나는 PC방에 줄 서서 기다려 겨우 앉았는데 배틀넷 접속이 Realm Down 과 함께 실패했던 다른 많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기도 했었다. 집에서 편하게 싱글 플레이 하면 됐었으니까..
아직도 배틀넷 계정에 등록해두곤 가끔씩 다운로드해 즐겨보는 추억의 명작 디아블로 2.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출시 전 PC Power zine에서 다뤘던 디아블로 2 프리뷰 기사를 통해 "이거 스테이지 구분 없이 전 세계를 여행하는 건가?"라는, 심리스의 헛된 꿈을 꾸었던 덕분에 단락 별로 끊어진 "액트" 개념이 상당히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즈음하여 친구들과 "스킨은 리니지인데 IP만 디아블로인 MMORPG가 나와줘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자주 하곤 했었다. 2013 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럴 기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2002 - 화이트데이: 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 (손노리)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던 한 게임에 대한 소식.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와 다크 사이드 스토리의 제작사에서 신작 공포 게임이 출시됐는데 그게 그렇게 무섭다더란 이야기. 배경이 학교인데 귀신도 나오고 귀신들린 수위도 나온다고. 그리고 어느 날 우연찮게 손에 넣은 "화이트데이"라는 게임을 켜보고나서, 친구들이 말하던 게임이 바로 이 게임이라는 걸 즉시 알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요소들을 나열해보자면, "밤의 학교"라는 익숙하면서도 낯 선, 그리고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던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그 어떤 공격 수단이 없이, 그저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름끼치도록 리얼한 공간감을 제공해주는 "사운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화이트데이는 유달리 사운드를 이용한 긴장감 연출에 능숙했었는데, 너무 오래 뛰어 심박이 증가하면 어슴프레하게 들리는 환청이라거나,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물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찌이이이익- 하는 괴이한 소리(얼굴 귀신이 다가오는 경고음이라는 걸 알고나선 소리 자체에 심한 노이로제가..), 그리고 화이트데이의 상징인 수위아저씨의 열쇠 잘그랑 거리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 키 꾸러미를 잘그랑 거리면서 다른 아이들을 겁주는 것이 유행인 적도 있었을 정도로, 상당히 센세이셔널한 작품이었다.
2003 - GTA 3;Vice City , (Rockstar Games)
게임계의 이단아 같은 존재인 GTA 시리즈. 개인적으로는 가장 멋졌다고 생각되는 시리즈는 3 편의 두 번째 확장팩인 산 안드레아스이지만, 이런 저런 현실 세계의 이슈들과 당시 PC 사양이 딸렸던 관계로(..) 제대로 즐겨보지 못했다. 대신 그 직전 편인 3 편의 첫 번째 확장팩, 바이스 시티는 온갖 요소들을 파해치고 다닐만큼 열심히 즐겼던 작품. (아마 비공식 유저 제작 한글 패치의 공이 컸던 것도 있을 것이다.)
GTA 시리즈를 처음 접한 건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2 편이었는데, 2D이면서 탑뷰였던 작품이었지만 아무 차나 훔쳐타고, 아무나 죽이고, 경찰을 따돌리고, 세력 다툼을 하는 시리즈의 기본 경험은 이미 완벽한 상태였었다. 이후 3 편에서 Full 3D로 구현된 리버티 시티라는 음울한 회색 도시를 구현했을 때, 그리고 그 안에서 2 편의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재현해냈을 때 처음으로 "오픈월드란 이런 것인가!"라는 감탄을 하게 됐지만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이런 저런 뻘짓만 하다가 금방 관두게 됐다. 이후 바이스 시티를 접했을 땐 여러가지 여건이 맞아떨어져 진득하게 즐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본편과는 달리 상당히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해변가 배경과, 처음 등장한 바이크 류의 탈 것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부동산을 구매해 땅따먹기를 할 수 있다니.. 특수 임무 차량을 탈취해 택시나 경찰차, 소방차 또는 피자 배달 오토바이 등의 미니 미션들을 발견하는 것도 상당히 재밌었으며, 아무 의미없는 게임 통계란의 "총 걸은 거리, 차를 타고 이동한 거리" 등은 "잡질이 유의미할 수 있다니?"라는 또다른 가능성을 알려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GDF의 샌드박스 관련 스레드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이미 기반이 갖춰졌던 2 편을 Full 3D 세계로 구현한 3 편 본편이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었고, 그 이후의 행보는 그 정도의 충격과 혁신적인 느낌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환경을 다양성(도시와 교외지역의 공존)을 담아내거나 먹거나 운동하는 등의 액션에 따라 캐릭터의 스테이터스 뿐만 아니라 외형 변화까지 나타낸 산 안드레아스가 정점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비주얼 퀄리티나 유포리아 엔진을 사용한 AI 반응은 상승했지만 마치 3편의 리부트 같은 느낌으로 도시에 국한된 경험이라는 점이 부정적이었던 4편, 그리고 산 안드레아스 이상의 지역 스케일과 역대 최대 규모로 담아낸 각종 컨텐츠들이 오히려 잘 녹아들지 못해 포털사이트 같은 느낌을 주는 5편은 기술의 진보와 게임 디자인의 퇴보가 맞물린 씁쓸한 미래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2004 - 마비노기 , (DevCAT)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작품 마비노기.
당시에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씰온라인 등과 경쟁을 벌이는가 싶었지만, 기성 온라인 게임들의 시스템을 계승하고 있던 씰온라인과는 달리 세간에서는 "한국형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판타지 세계에서의 삶 그 자체를 녹여내는데 집중한 마비노기는 2013 년 현재까지도 전 세계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팬층을 형성하며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살이 찌고 빠지는 게임, 모닥불에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게임, 음악을 연주하고 심지어 작곡까지 가능한 게임 등의 여러 독특한 게임 경험을 제공하는데 성공적이었고, 당시 마비노기를 같이하던 친구들과 길을 걷다보면 아무 생각없이 가로등이나 가로수를 때리고 싶어지거나, 뚱뚱한 사람을 보면 뒤에서 "나무열매를 많이 먹어야겠어"라며 소곤거리는 등의 극심한 후유증을 수반하기도 했다.
일일 2 시간 무료 플레이라는 독특한 정책 덕분에, 사실은 장기적인 순환 컨텐츠가 구비되어 있지 않던 OBT 당시(밀레시안들 사이에서는 G1 여신강림 보다도 이전 세대라는 의미로 '고대'로 불리는 시절..) 2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알바족들과, 어차피 2 시간 뒤면 못보게 될 것을 무어 그리 열심히 사냐며 류트를 연주하고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풍류를 즐기던 집시족들이 어우러져 재미있는 광경을 자주 연출했다.
낮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알바를 하고, 밤에는 촌장 집 앞 공터에 모여 캠프파이어를 지피고 음식을 나눠먹고 악기를 연주하며 가무를 즐기다가, 상처를 잔뜩 입고 던전에서 돌아온 모험가에게 우르르 모여들어 붕대를 감아주고 음식을 건네던 훈훈한 광경이 이 게임이 가졌던 최고의 로망이었다.
서비스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비록 지금은 OBT ~ G1 무렵의 풋풋한 모습들이 많이 퇴색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라성같은 울온과 함께 감히 언급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게임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데브캣 리크루팅 페이지를 보고 처음으로 "나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목표를 가졌기에, 남다른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2005 - 완다와 거상 , (Team ICO)
이 무렵에는 2004 년 10 월에 입대를 한 뒤로, 이런 저런 포상들을 많이 받아서 1~2 개월에 한 번 꼴로 휴가를 나오곤 해서 비교적 수월한 군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전역까지 대대 전체 최다 출타 기록 보유자인 건 자랑. 이 기록이 어떤 후임한테 깨졌다는 얘기를 전역 뒤에 들었지만 이미 전역 했으니 무효.)
당시 군생활의 낙은, 부대에 있을 때는 게임 잡지(주로 넷파워)를 보면서 게임 세계를 추억하거나 지금은 데브캣에서 마영전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당시 후임과 게임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주된 낙이었고, 휴가를 나와서는 오는 길에 용산에 들러서 구입한 신품 혹은 중고 PS2 타이틀들을 돌려보는 게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완다와 거상도 그 데브캣 후임이 어느 날 휴가를 다녀오더니 "빵햄 완다와 거상 해보셨슴까?" 라며 추천해서 알게 됐고, 그 다음 휴가 때 바로 구입해서 플레이해보게 됐다.
사진으로만 볼 땐 몰랐던, 압도적인 거상의 스케일. 그리고 메마른듯 보이지만 너무도 아름다웠던, 당시 현 세대 기기의 한계를 끌어올렸다고 평가되던 미려한 비주얼, 그리고 그 거상에 올라타 대롱거리던 완다의 위태로움과 박진감, 이 모든 것들을 한 데 어우러지게 만드는 웅장한 음악까지. 그리고 사랑스런 애마 아고르! (완다가 부를 때 아무리 들어도 아르고로 들리지만 아고르라고 써있으니 그런 걸로..)
쓰러뜨린다는 건 상상도 안되는, 거의 자연재해급의 거상들을 온갖 방법으로 공략해가며 하나씩 하나씩 쓰러뜨려갈 때의 쾌감과 달성감은 비록 해본 적은 없지만 와우의 오리지널 시절 40인 공격대 던전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렸을 때의 그것과 흡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듀얼쇼크의 조작 자체가 많이 서툴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리어가 가능할 정도로 원하는 방식대로 조작하는 데에 크게 무리가 없던 인터페이스 덕분에, 이후 패드 액션 게임에 상당히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고마운 게임이다.
2006 - World of WarCraft , (Blizzard Entertainment)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이 될 수도 있지만, 게임을 하고나서도 아닌 게임 프로모션 영상을 보고 감격에 눈시울을 적셨던, 내 빠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그 작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어느 날, 우연히 E3에 출품한 블리자드의 신작 발표 영상에서 상당히 낯익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블리자드 게임을 구매하면 각종 E3 영상들이 함께 들어있었는데, 그 시네마틱들을 보는 게 또 그렇게 멋지고 즐거웠다. 학교 가기 전에 한 번씩 워크래프트 3 E 3 영상 중 풋맨과 그런트가 싸우는 곳에 인페르날이 떨어지는 영상을 보고 갔었는데, 나중에는 대사 뿐만이 아니라 동작 하나까지 다 외우게 되더란.. 낮게 깔리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그렇게 멋지게 들릴 수 없었다. "We never paid any heed to the ancient prophecies..."
워3 모델링을 개량한 것 같은 때깔, 누가봐도 풋맨처럼 생긴 인간 남자, 그런트처럼 생긴 초록 피부의 오크, 나이트 엘프..? 워크래프트였다.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블리자드 3 대 세계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워크래프트의 신작이 발표되고 있었다.
오크가 뛰어다니고, 풋맨이 뛰어다니고, 마을 같은 것이 보이는데 붉고 멋진 폰트로 Entering the 뭐시기 뭐시기라고 뜨는 것까지만 보고, 3인칭 백뷰 액션 게임이 나오는가보다.. 하고만 있었는데, 충격은 그 다음 영상이었다.
인간 여럿과 오크 여럿이 언덕에 나란히 서 있었는데, 무려 머리 위에 이름이 써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온라인 게임에서 익히 보아오던 그 인터페이스! 캐릭터 머리 위 닉네임!
워크래프트가 온라인으로 나온다니! 세상에! 아제로스를 직접 돌아다닐 수 있다니!
워크래프트 시네마틱을 보면서 머릿 속으로 떠올리던 망상이, 눈 앞에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전율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와우를 사랑하는 건 단지 빠심만이 아닌, 내 꿈을 실체화해준 최초이자 최고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입대 후 처음으로 100일 휴가를 나왔을 때, 삼인조 중 A 역시 군에 있던 터라 고향에 없어 남아있던 B와 함께 PC방을 찾았는데, 와우 포스터의 듬직한 오크아저씨가 붙어있는 걸 보고 이 물건이 드디어 서비스 중인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자리에서 앉아 나는 트롤 남캐 사냥꾼을, B는 오크 남캐 전사를 만들어서 듀로타를 탐험하고 오그리마에 감동하고 뒷문으로 빠져나와 한 없이 드넓은 불모의 땅을 뛰어다니다가 무려 20 시간이 지나서야 PC 방을 나설 수 있었다. 시간 당 천 원이었던 게임비의 총액 4 만원은 이 멋진 경험을 함께 나눠준 감사에 대한 표시로 내가 쿨하게 계산하고 나서는데,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아깝기는 커녕 오히려 더 즐기고 싶었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과 휴가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쉬웠을 따름이었다.
와우는 내게 그런 빠심의 충족과 함께, 온갖 시스템의 활용법을 보여주면서 게임 구조와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해 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큰 축이 되준 게임이었다.
2007 - World of WarCraft; Burning Crusader , (Blizzard Entertainment)
블러드 엘프와 드레나이의 추가. 그리고 그들에 한해 제공되는 진영 간 크로스 클래스. (호드의 전유물이었던 주술사가 드레나이에게, 얼라이언스의 전유물이었던 성기사가 블러드 엘프에게 제공됐다). 그리고 워크래프트 2 확장팩 다크 포탈 너머로를 즐긴 팬들에게 익숙한 드레노어, 아웃랜드의 추가. 그리고 무려 "비행".
진영 간 인구 불균형이라는 걸 미모의 블러드엘프 호드 진영 추가라는 초 강수로 한 방에 역전시켰지만, 역으로 호드에 인구가 쏠려 그 비율은 지금까지도 극복하지 못한 난제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안유머.
기술적인 이슈와 물리적인 장비의 한계로 필드 전쟁을 수용할 여건이 되지 않자, 정규 컨텐츠화 된 PvP 컨텐츠 "전장"과 "투기장"으로 아제로스의 싸움꾼들을 인스턴스 존으로 몰아넣는데에는 성공했지만, 필드 전쟁의 로망에 대한 불만이 역으로 발생하게 된 또다른 난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물론 나 또한 많은 수의 필드쟁 매니아들과 비슷한 목소리로 불만을 성토함과 동시에 전장 죽돌이가 되어 탄력도 아이템을 둘둘 말고 다니는 이중성을 보이긴 했었지만..)
그래도 "확장팩"이라는 블리자드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전 세대의 리니지가 보여줬던 "에피소드식 구성"에 대응하려는 모습이 참신해보였고 (물론 구성은 갖고 이름만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서비스 중인 온라인 게임에 그 정도 규모(에피소드보다 확장팩이 규모가 크긴 했다)의 업데이트를 주기적으로 감행할 거라는 약속만으로도 충분히 이슈를 일으키기도 했다.
적어도 이 때까지는 흥행 상승세였던 건 분명했다. 대적자가 없다고 여겨졌을 정도였으니까.
2008 - World of WarCraft; Wrath of the Lich King , (Blizzard Entertainment)
모든 지표가 최고조에 달했던 와우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
최초의 영웅 클래스인 데스나이트 추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평가하는 차디찬 북녘의 노스렌드 추가, 온라인 게임의 스토리텔링 강화를 극적으로 향상시킨 위상변화 시스템, 그리고 황금기를 직접적으로 견인했던 전투의 캐쥬얼화까지.
사실 위에 열거한 모든 항목이 개인적으론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의 조합으로 해당 게임 서비스 동안 다시 없을 황금기를 구가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후 대격변에서 자신들이 처음에 세웠던 원칙과 기조를 되찾으려 노력했지만 바로 이 리치왕의 분노에서 폭발적으로 유입된, 그러니까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물건을 어미로 각인하는 것과 비슷하게 처음 겪은 서비스가 해당 게임의 기준이 된 다수의 유저들에게 어마어마한 불만 세례를 받고 결국 기조를 철회하게 되는,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발목을 붙잡게 되는 양날의 검같은 존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던 캐릭터인 리치왕 아서스와, 그의 라이벌이었던 일리단을 모두 죽여버림으로써 이 이후엔 더 이상 지금같은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골수 팬들의 반응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아서스를 고작 두 번째 확장팩 만에 쓰러뜨린 건 그들이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할만한 업데이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뭐.. 시간의 동굴이라는 네러티브에 있어 만병통치약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어떻게든 재활용 해 풀어갈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2009 - Monster Hunter Portable 2nd G , (CAPCOM)
거대 몬스터와의 사투, 동료들과의 협동, 알 수 없는 적의 생명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 "수렵".
"오직 거대 보스들과의 전투로만 이루어진 점"에서 볼 때 (물론 몬스터 헌터는 채집과 새끼 몬스터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비중으로 보면 없다시피 하니까...) 얼핏 완다와 거상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완다와 거상은 오히려 이 다음 해에 출시될 갓 오브 워 3의 가이아 스테이지에 가까운, 몬스터 자체를 하나의 지형처럼 이용한 액션 게임이라는 걸 감안하면 몬스터 헌터와는 뿌리부터 다른 게임이었다.
몬스터 헌터는 처음 나열한 굵직한 특징들을 짜임새있게 잘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대전 액션 게임의 명가인 CAPCOM의 기술 노하우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거대 몬스터와 헌터들 간의 합을 겨루는 대전 액션의 향기를 진하게 풍겼다. 아주 조금만 플레이를 해보면 알 수 있듯이 몬스터의 공격과 딜레이, 플레이어의 행동(공격과 아이템 제작 및 사용)과 딜레이의 간극을 조절하는 것이 마치 대전 액션에서 공방의 합을 겨루면서 프레임 단위를 계산하는 것의 보다 간소화 된 버전처럼 느껴진다.
초보 헌터 시절에는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 수레에 실려 거점으로 끌려 오기를 수 차례 겪게 되지만, 그 일을 몇 번 겪다보면 무턱대고 뛰어드는 대신 시간을 두고 몬스터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시점부터 중견 헌터라 불릴 수 있게 되면서 이를 극복하는 순간 초보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자 강력한 허들인 "얀쿡"을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길드의 의뢰를 받아 거대 몬스터를 사냥하고 생포하거나 사살해서 얻은 신체 부위를 재료로 삼아 무구로 가공한다는 설정이, 자칫 뻔한 반복 닥사 노가다 게임으로 비춰질뻔한 이 게임의 배경을 "수렵민의 로망"으로 포장할 수 있게 만들었던 점은 정말 놀라운 네러티브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무난하게 통과한 뒤에는 "사냥 - 재료 획득 - 더 강한 몬스터의 사냥 - 강함에 대한 필요성 - 고급 장비 제작 욕구 - 제작을 위한 반복 사냥"의 순환 고리로 헌터들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시스템 적 성장은 제로(0), 클래스 구분도 제로(0). 하지만 반대로 장비의 강화를 통한 플레이어 성장(少), 무기의 교체로 이뤄지는 간편한 잡 체인지는 이 게임의 뿌리인 "액션 게임"으로서의 핵심 가치인 "플레이어의 솜씨 우선"이라는 기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끊임 없는 플레이 동기를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콘솔 버전은 못해봤지만 주변의 다른 분들 말씀에 의하면 오리지널 보다는 포터블 시리즈가 훨씬 알차게 정제된 로열젤리 같은 느낌이라는 평이 있다. 당시에 회사 사람들과 틈만 나면 집회소에 모여서 수렵을 즐기는 시간이 압도적이었을만큼 (비록 커펌이 대유행하긴 했으나) 국내 PSP 판매에 1등 공신이 아닐까 싶은 작품이고, 그래서 3DS가 아닌 PSVita로 우리말 지원 정발로 나와주길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월 정액제로 서비스될 예정인 프론티어G 같은 거 말고 포터블 4 를 내주길 간곡히 희망한다..)
2010 - God of War 3 , (Santamonica Studio)
PS3 초기의 필구 타이틀이라 불렸던, 심지어 이것 때문에 PS3를 구매하게 만들었던 희대의 역작 갓 오브 워 3.
사실 어린 시절 잡지에서 소개된 것으로만 짐작했지만 정작 1~2 편을 해보지는 못한 나에게, PSP로 발매된 몇 가지 시리즈로 이 게임의 선정성과 폭력성(이라고 쓰고 호쾌한 액션이라고 읽는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차 세대 기기의 성능을 십분 발휘한 본편의 최신작을 경험해보고 나서는,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크래시 오브 타이탄을 보고 와서 "영화가 게임보다 못한 게 아니라 게임이 영화보다 뛰어난 것 같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닐만큼 그야말로 혁명적인 영상을 선사했다.
화려한 영상과 전투 액션은 기본이고, 진행하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퍼즐들과 보스들의 공략 전술들은 액션 어드벤쳐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탄탄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 장면들은 게임의 최초 배경이었던 가이아의 몸, 착시 효과를 이용한 헤라의 정원, 스테이지의 마지막 상대인 각각의 신들을 처치하고 얻게되는 그들의 신체 일부인 전리품,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했던 "2인칭 피해자 시점의 카메라워킹" 정도를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피해자의 눈으로 바라본 주인공 크레토스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2011 - World of WarCraft; Cataclysm , (Blizzard Entertainment)
업계인들뿐만 아니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쉽게 들어볼 수 있는 단어가 된 "대격변".
출시 당시에는 콘솔 게임에 탐닉하느라 온라인 게임을 잠시 접어뒀던 터에 대격변을 즐기지 못했지만, 아내도 나도 워낙에 와우를 좋아하던 터에 함꼐 할만한 게임이 뭐가 있을까 해서 마비노기, 마영전 등을 잠시나마 즐기긴 했지만 "Aㅏ.. 그래도 뭔가 와우만 못한 것 같아.."하는 아쉬운 마음에 다시 아제로스로 귀환하게 되었다.
와우 이전 RTS였던 워크래프트 시리즈 중에서는 그나마 최근에 등장했던 아서스, 일리단 등과는 달리, 십년도 더 된 옛 기억 속에 고이 뭍혀있던 "데스윙"이라는 조상님 같은 존재를 끄집어내 아제로스 대륙을 뒤집어 엎는다는 설정 자체도 제법 파격적이었고, 실제로 감행한 수 많은 기존 컨텐츠/시스템들의 대대적인 리뉴얼 작업은 그야말로 "블리자드 스케일의 작업 규모란 이런 것인가. 대격변을 위해 갈아없어진 수많은 블리자드 개발자들을 위해 묵념을.."같은 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제로스 전 대륙 퀘스트 및 동선 재설계, 아제로스 주요 지역들의 지형 변경, 전투 기반 시스템 및 스킬 시스템 재설계, 아제로스 내 미공개 신규 지역 다수 추가, 진영별 종족 1 개체 (얼라이언스의 늑대인간, 호드의 고블린) 추가, 아제로스 전 지역 비행 기능 추가, 아이템 외형 변경이라는 그야말로 뼈와 살을 깎아내는 대규모 개편을 감행했다.
하지만 리치왕의 분노 소개 말미에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지나치게 라이트해진 게임 난이도를 우려했던 개발진들은 그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난이도로 기준을 상향하게 됐는데, 그간의 라이트함에 젖어있던 다수의 플레이어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고 직접적인 난이도 하락 패치 및 각종 보조 기능 지원 등으로 결국 개발 방향을 선회하게 되는 다소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올드비인 나로선 적절한 난이도라고 생각했지만 애초에 리분이 기준이었던 수많은 리분세대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난이도였을 것이라고 짐작은 해본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만렙조차 찍지 못했던 오리지널 시절, 전장만을 탐닉했던 불성 시절, 캐쥬얼해진 덕분에 부담 없이 길드 형들이 데려간 첫 레이드 경험인 리분 시절과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자력으로 레벨링-영웅 던전-레이드와 전장-투기장까지 발을 들여 나름의 성과를 달성했던 유일한 시절이기에 와우의 한 패키지 중 그나마 A to Z를 제대로 파악했던 유일한 확장팩이라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이전 확장팩 코멘트에서 미처 적지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흔히 국내 MMORPG 서비스들이 보여주는 모든 변경 내용들을 한 번에 확 적용하는 방식이 아닌 근간 시스템부터 전 버전 말기에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업데이트 방식(이를테면 소격변-중격변-대격변으로 불리는 순차적인 업데이트)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큰 변화에 갑자기 적응하기란 기존 플레이어들에게 큰 저항 요소가 될 수 있는데 이를 비교적 적절한 수위로 흡수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2012 - Journey , (THATGAMECOMPANY)
당시 트위터 타임라인을 가득 채운 화제의 인디 게임이었던 져니. 플레이 타임 두 시간 남짓한 이 인디 게임에 업계와 게이머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심히 궁금했었는데, 큰 마음 먹고 번거로운 PSN 쿠폰 지갑 충전 절차를 거쳐 구매한 이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그야말로 뽠타스틱 엘라스틱 그 자체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플로우-플라워라는 이 회사의 전작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어떤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인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무턱대고 게임을 실행했는데, 1차적으로는 그래픽이 스샷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너무 예뻐서, 2차적으로는 HUD가 없어서, 그리고 3차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홍 호옹 홍" 거리는 알 수 없는 소리밖에 없어서 충격적이었다. 한글화를 해줬다길래 뭔가 텍스트 정보가 많은 게임인 줄 알았는데, 게임에서 나오는 텍스트라곤 고작 맨 처음 등장하는 "패드를 움직여 보세요" 이 한 문장 뿐이었다.
내가 누군지 뭐하는 존재인지는 커녕 목적도 게임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그야말로 미지의 사막 한 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진 막막한 느낌.
그저 막연하게 어디서든지 눈에 잘 보이던 "저 산으로 가는 건가?"라는 불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그 여정은 알 수 없는 동료를 만나 서툴지만 조금씩 소통하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나 두렵고 고된 시련들을 넘어 상쾌한 마지막,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 시도 현실 세계로 튕겨져 나올 수 없이 온전히 그 세계 안에서 모험하는 나를 경험하게 해줬다.
직접 서술이라는 방식이 얼마나 낮은 레벨의 디자인인지를 보여주는 "메가맨~ 메가맨~" 하는 레벨디자인 영상에서 언급되는 직관적인 게임 경험과 게임을 통해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조율하는 능력, 그리고 능동적인 협동 플레이를 이끌어내는 디자인과 깊은 여운 등의 개인적으론 거의 완전체에 가까운 게임이라는 느낌을 받아 "역시 개발의 끝은 인디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2013 - The Stanley Parable , (Galactic Cafe)
화제작, 문제작, 걸작, 명작이라는 평가와 유쾌함과 불쾌함이라는 극단적인 피드백이 공존하는 인디게임 스탠리 우화.
개인적으로는 현업 게임 디자이너로서 감히 이 게임을 논하는 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며, 가장 완벽한 리뷰는 오직 직접 플레이 뿐이라는 생각에 이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본 블로그의 리뷰 링크로 끝내려고 한다.
스탠리 우화 리뷰: MAN vs STORY, 끌려갈 것인가 끌고갈 것인가?
지금까지 약 24 년 간의 개인적인 역대 GOTY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1) 가정용 콘솔 게임에서 PC 패키지 게임으로의 변화
2) 리듬액션으로 저변이 확대된 아케이드 센터의 부흥
3) 콘솔 게임의 발전과 PC 게임의 온라인화
4) 포터블 게임기의 발전과 PC 인디 게임의 약진
5) 나를 키운 건 8할이 블리자드 였다(....)
와 같은 큰 흐름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바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도 언급될 필요성은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GOTY 급 게임 경험을 개인적으로는 느껴보지 못한 탓에 본 글에서는 다루지 못하게 된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이 같은 격동의 게임 시대를 직접 살아온 세대로서, 이 같은 경험들에 대한 공유가 좀 더 많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끝으로 my GOTY를 마쳐볼까 한다.
-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게이머 인생에서의 GOTY에는 어떤 게임들이 꼽힐 지 궁금한, Zerasion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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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