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F에 올렸던 글을 블로그로 옮깁니다.

GDF 원문 링크: http://gdf.inven.co.kr/t/topic/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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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Zerasion 입니다.

어제 공개된 데브캣 스튜디오의 신작, "마비노기 듀얼"을 너무 재미있게 즐긴 나머지 관련된 글을 써보고자 하는 마음에 출시 만 하루도 안 된 시점에 성급하게 타자를 두들겨 봅니다.

우선 접근하려는 방식은 제가 이해한 범위 내의 규칙에 대해서 매직 더 개더링(이하 MTG), 하스스톤, 그리고 마비노기 듀얼을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이 세 게임 모두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MTG의 경우 특히 경험이 부족해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발견하시면 이 스레드를 통해 정정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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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사 게임과 규칙 비교하기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세 개임의 규칙들을 비교해 본 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그래서 마비노기 듀얼은 어떤 효과를 얻었나"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 승리 조건
유사 장르에서 게임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세 개임 모두 똑같은 조건을 승리 규칙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TCG에서 파생된 CCG의 경우에도 대부분 플레이어 또는 영웅으로 불리는 카드 외 함락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특기할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2) 트레이드
아마도 TCG라는 장르의 기본에 충실한, T(Trading)를 지킨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상 크게 "카드 게임"의 범주에 들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하스스톤은 트레이딩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CCG(Collecting Card Game)으로 분류됩니다.
근거리 통신을 이용한 소울링크로 카드 교환을 하는 시스템 등을 보면, 사람과 사람이 맞닿아 게임을 나누는 부분에 대한 재미에 대해 가치를 크게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소모 자원
MTG의 덱에 구성할 수 있는 소모 자원의 종류 제한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눈물) 하스스톤에서는 이를 마나스톤이라는 단 한 가지의 자원으로 압축해 굉장히 파격적인 접근성을 제공했는데요, 마비노기 듀얼은 최대 세 종류의 자원을 같은 덱에 구성할 수 있게 제공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깊이를 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 부분은 자원에 대한 이해와 운용에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한 다수의 초반 플레이어들에겐 복잡한 요소로 여겨질 수 있고 게임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무덤
하스스톤은 명시적인 무덤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사용한 카드는 기본적으로 소멸하는 것으로 취급합니다. 간혹 일부 카드의 "부활 효과를 가진 주문"을 통해서만 죽은 하수인을 되살릴 수 있고요.
MTG는 기본적으로 물질계(..)의 카드를 쌓아놓고 하는 게임이며 명시적인 무덤이라는 공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록 마음대로는 아니지만 무덤에서 카드들을 다시 가져오는 상황이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여기서 마비노기 듀얼은 이를 계승한 것 뿐만 아니라 기본 시스템 안에 녹여내는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1의 행동력과 영웅의 체력 일부를 소모하는 대신 무덤의 모든 카드를 다시 손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는 아래에서 이야기할 마비노기 듀얼만의 드로우(카드 뽑기) 없는 시스템과 최대 12 장으로 구성되는 덱의 제한 때문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이 끝나기 전에 손에 든 모든 카드를 사용하는 상황이 매우 많을 테니까요.

5) 방어력
하스스톤은 매우 여러모로 간단한 규칙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방어력의 경우도 오직 영웅에게만 존재하는 개념이고 방어력을 무시하고 직접 체력을 깎는 특정 공격 방식이 아니고서야 방어력 수치 1은 체력 1과 똑같이 취급하기 때문이죠. 방어력이란 오직 체력보다 먼저 감소되는 개념이라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비노기 듀얼의 방어력은 생각보다 복잡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접 플레이하는 동안에는 도무지 어떤 규칙으로 감소하는 지 이해를 못하고 있다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던 중 다른 플레이어의 공략을 보고서야 처음으로 이해했습니다.
[헝그리앱] 마비노기 듀얼 방어력과 체력의 관계에 대해서
방어력이 있어서 방어자에게 유리하다는 건 확실히 알겠지만, 그래서 몇의 공격을 맞았을 때 각각 얼마 얼마씩 깎이는 지, 그래서 더 압축해서 이걸 맞았을 때 이 소환수가 사는 지 죽는 지 판단하기가 초보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6) 효과의 분류
제 이해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만, 일단 MTG에는 명시적으로 분류되는 효과 구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시브 인스턴스 등의 스펠 제외) 하스스톤은 세 가지로 압축되어 명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전투의 함성/죽음의 메아리/미분류 가 바로 그것입니다.
전투의 함성은 하수인이 전장에 등장할 때 1회 적용되는 효과. 죽음의 메아리는 하수인이 죽을 때 1회 적용되는 효과. 미분류는 카드에 적힌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룹을 다시 다른 효과에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죽음의 메아리를 가진 하수인이 등장할 때마다 공격력 1 증가 등)
하지만 MTG와 마비노기 듀얼은 딱히 시스템적으로 이를 구분지어 그룹화 하지는 않고 있는데요, 여기서 설명을 카드 가득히 상세하게 표현한 MTG의 경우에 비해 공간 제약이 심해 문장을 압축한 마비노기 듀얼의 효과 설명이 굉장히 애매하거나 부족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직접 사용해보기 전에는 문장만 봤을 때 이 효과가 한시적인건지 지속적인건지 또는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주는 지가 모호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하스스톤의 효과 분류 방식은 반대로 이야기해서, 게임이 가질 수 있는 효과의 종류를 제한하는 역기능이 되기도 합니다. (웃음)

주문이 발동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전장의 함성과 죽음의 메아리만 "분류"로 언급했지만, 사실 그 외에도 굵은 글씨로 써진 많은 종류의 효과들이 사전에 약속되고 정의된 형태로 표현을 "압축"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은신"이나 "천상의 보호막"같은 효과 또는 "도발"과 같은 효과들은 해당 효과 자체를 카드에 설명하지 않고 굵은 글씨로만 표시하면서, 카드 정보를 볼 때 "은신", "천상의 보호막", "도발" 등의 효과가 어떤 것인지 카드 옆에 추가로 툴팁처럼 설명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카드의 주문 설명 칸의 공간을 훨씬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스스톤이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는 확실히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7) 턴과 페이즈
매직은 한 턴이 전투 선언, 공격자 선언, 방어자 선언, 전투 피해, 전투 종료 등 여러 개의 페이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카드를 가로로 놓는 탭 방식을 사용해서, 사용하지 않은(언탭) 카드는 비용만 충분하다면 한 턴 내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스스톤은 페이즈를 삭제하고 턴 내에서 비용 제한 내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점을 열어두었습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한 턴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비노기 듀얼도 턴은 유지하고 페이즈를 삭제한 부분까지를 보면 하스스톤처럼 간소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로 "행동력"이라는 강한 제약을 추가했습니다. 내 손에 카드도 충분하고 자원도 충분하더라도, 한 턴에 할 수 있는 행동의 횟수는 아래에서 다룰 레벨에 따라 강하게 제약됩니다.

8) 소환수 중간 계산
MTG는 한 턴 안에 사망시키지 못한 소환수는 다음 턴에 모든 체력이 회복됩니다. 이는 전장 상황을 따로 적지 않는 이상 게임을 계속하는 동안 기억만으로는 제대로 게임을 진행시키기 어려운 오프라인 게임이라는 물리적인 제약 때문일텐데요, 하스스톤과 마찬가지로 마비노기 듀얼도 소환수들의 중간 결과를 턴이 끝나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이니 만큼, 기계가 인간의 계산을 대신해서 화면에 표시해줄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부분은 현대 게이머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튼튼한 원류가 되는 게임을 각색하는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기존의 탄탄한 규칙을 흔드는 일이라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감행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9) 되살리기
되살리기는 사실 위의 4) 무덤에서 무덤의 존재 여부만 언급하고 행동력을 소비해 모두 가져오는 시스템을 다루기 위해 분리했지만 위에서 언급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10) 드로우(카드 뽑기)
일반 포커나 화투처럼 뒤집힌 카드를 뽑아 어떤 카드가 나오는 지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는 운의 요소를 MTG나 하스스톤은 그대로 따릅니다. 하지만 마비노기 듀얼은 이 같은 운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플레이어의 실력으로 대부분의 상황을 조절할 수 있도록 드로우라는 요소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따라서 플레이어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의 상황에 보다 전략적인 대응과 운용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장점이 되지만, 반대로 선택 하나 하나의 무게가 커지기 때문에 게임이 굉장히 어려워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 게임에 운이 개입하는 것은 잘하는 사람도 실력과 무관하게 승리에서 멀어질 수 있고, 반대로 잘 못하는 사람도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승패의 결과에 대한 플레이어의 책임이 다소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지만, 마비노기 듀얼은 이를 온전히 플레이어의 몫으로 두는 것 같습니다.

11) 자원 추가
자원을 추가하는 방법은 세 게임이 모두 다릅니다. MTG는 플레이어가 미리 덱에 포함시켜둔 대지 카드를 매 턴 마다 1장씩 사용해 자원을 축적해나가는 방식이고, 하스스톤은 아예 시스템이 정한 "턴 마다 최대 마나스톤 1 추가"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마비노기 듀얼은 매 턴마다 자신이 보유한 모든 종류의 자원이 1씩 추가되는 것이 기본적인 자원 추가 방법이지만, 여기에 추가 자원 획득이라는 변수를 넣어 두었습니다. 턴 내에 행동할 수 있는 횟수인 행동력을 1 소비해서, 내가 사용하는 자원들 중 랜덤한 한 종류를 1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실 운의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드로우를 제거한 방식과 꽤나 상반되는 개념처럼 보이는데, 행동력 1의 가치가 굉장한 게임에서 그런 행동력을 소비하고 습득하는 자원이 랜덤하다는 부분은 꽤나 운의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활용해 단일 자원 덱 같은 것을 구성하는 것도 메타게임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지만, 꽤나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12) 기본 공격 대상
MTG의 소환수들은 특별히 방어자가 지정되지 않는 한 영웅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스스톤은 기본 공격 대상이라는 개념이 없이 아예 모든 대상을 수동으로 설정하며, 다만 상대편이 전장에 소환한 "도발" 효과를 가진 하수인이 있다면 반드시 이 대상을 먼저 처치해야만 하는 규칙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마비노기 듀얼은 이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방식으로 공격 대상을 결정합니다. 게임에는 플레이어마다 정해진 다섯 개의 슬롯(자리)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각 슬롯에 소환된 소환수는, 바로 앞 슬롯의 대상을 공격하게 됩니다. 앞 슬롯에 소환수가 있다면 그 소환수를, 빈 칸이라면 영웅을 공격하게 됩니다.
간혹 카드의 조건에 "ㅇㅇㅇ한 대상을 공격"이라고 적혀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굉장히 명료한 규칙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 편, 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는 다른 카드 게임들과 달리 "판"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보드 게임의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막지 않으면 영웅을 때리겠다"는 것은 MTG의 향기가 많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13) 공격 방식
MTG와 하스스톤은 모두 동시 판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공격력이 2 이고 체력이 1 인 두 대상이 공격을 주고 받으면 둘 다 사망하게 되는 방식입니다. 마비노기 듀얼은 공격자가 일방적으로 때리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공격력이 강한 대상을 앞에 두고 상대방의 공격을 저지하는 장기나 체스 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적의 공격력이 얼마가 됐든, 내 공격력이 적의 체력보다 크기만 하면 내 소환수의 사망 없이 적을 처치할 수 있다는 점은 게임의 성격을 다른 두 게임과 크게 가르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4) 레벨
게임 도중 레벨업한다는 점이 굉장히 DOTA like로 불리는 MOBA라는 장르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 밖에서 플레이를 반복하면 직업별로 경험치를 누적하는 하스스톤의 레벨 개념이 아니라, 실제 대전 도중에 영웅이 레벨업을 하는 개념은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레벨업의 효과가 굉장한데, 앞서 계속 중요한 요소라고 언급한 턴 당 사용할 수 있는 행동력이 1씩 증가하고(레벨 = 행동력), 각각의 카드들이 영웅 레벨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 부분이 조금 애매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위의 8) 소환수 중간 계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컴퓨터 게이밍이니 만큼 레벨업으로 변화된 카드들의 효과는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레벨업 하기 전에는 레벨업을 했을 때 어떤 변화들이 있을 지 플레이어가 사전에 파악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레벨업을 할 지 말 지를 선택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영웅의 레벨에 따른 카드의 성능 변화는 각 카드들을 확대한 상태에서 "도움말"을 보면 표시가 되긴 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만큼 번거롭고 페이스가 흐트러지는 데다 그만큼 직관성도 떨어집니다.
물론 레벨업은 할 수 있는 한 빨리 하는 게 대체로 유리하긴 하지만, 그렇다면 경험치를 빨리 얻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는 건지, 아니면 왜 자동으로 레벨업 시켜주지 않는 건지 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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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후에 UI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을 추가하려고 했지만, 이미 글의 양도 지나치게 길어졌고 점심 시간이 다해버려서 2부로 쪼개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의 소감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Hard to Master"인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만, "Easy to Learn"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SNS에서도 썼다시피, 가장 중요한 건 "재미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비노기 듀얼 정말 재밌네요...! 헉헉헉!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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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헌터 4G를 하면서 신형 무기인 차지 엑스를 쓰는 중인데, 차지 엑스는 얼핏 보면 포터블 3rd의 신형 무기인 슬래시 엑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써보면 두 모드 사이의 균형이 깨진 느낌이 든다.  

슬래시 엑스는 도끼로 차지하고 검일 때 피해량도 공격 각도도 좋아지기 때문에 어떻게든 검으로 만드는 게 기본이 되고, 도끼일 때의 전용 액션들로 선택지 정도를 제공하는 느낌이다. 이는 쌍검의 귀인화가 어떻게든 귀인화가 되면 좋지만 귀인화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차지 엑스는 한손검과 방패 상태일 때만 차지할 수 있고 도끼일 땐 소모만 할 수 있고 차지를 할 수 없는데, 도끼의 특정 기술(A 또는 A+X)에서만 차지된 병을 소모한다. 그런데 그 특정 기술은 한손검 상태에서 특정 콤보를 통해 도끼 단계를 건너 뛰고 바로 사용할 수 있어 도끼 단계를 유지하는 일이 별로 없다.  

게다가 차지된 힘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장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데 이 장전은 한손검 상태에서밖에 할 수 없고, 위에서 말한 도끼 스킵 콤보도 장전 동작에서 이어지는 콤보가 있어 더더욱 도끼 상태를 유지할 일이 사라진다.  

도끼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한손검 상태보다 기본 피해량이 높고 공격 각도가 대검처럼 크게 종/횡 베기라 부위 파괴에 유리하다는 정도인데 피해량은 병 소모 기술이 훨씬 크고 공격 각도 또한 도끼와 유사해서 부위 파괴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고서야 도끼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도끼 모드의 단점인 "가드 불가"와 "기본 이동속도 느려짐"만 더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슬래시 엑스와는 다르다 슬래시 엑스와는!"이라는 느낌으로 굳이 "다르기 위한 다름"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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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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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출시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최신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들에서는 "보물"이라는 새로운 야외 탐색 요소가 추가됐다.

야외 이동 도중 X자로 교차된 칼 표시나 은색 보관함처럼 생긴 표식이 미니맵에 표시되면, 그 곳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다.

나는 탈 것을 이용한 비행이 금지된 드레노어이기 때문에 그리핀/와이번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땅 위를 달려 이동하다가 심심찮게 보물 또는 희귀 괴물을 만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단순 이동이지만 길찾기의 재미도 있고, 이처럼 숨겨진 무언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기대감도 가질 수 있다.

아쉬란의 각 진영 도시에는 <고고학 조각> 이라는 꼬릿말이 달린 상인이 있는데, 드레노어의 각 지역별 보물 지도를 장당 100 골드에 판매하고 있다. 

< 아쉬란 호드 진영 도시 "전쟁의 창"에 머무는 고고학 조각 상인 스리카와 그가 판매하는 물건들 > 

 

그리고 구입한 보물 지도를 사용하면, 지도에 아래 그림처럼 엄청난 양의 보물 위치가 표시된다.

< 지도에 나타나는 은색 보관함 표식이 모두 보물의 위치 > 

 

이 중 며칠 전 플레이 도중 발견한 보물에 담긴 이야기가 무척 흥미를 자극해 잠깐 소개해보고자 한다.

서리바람 주둔지에서 마그나로크로 갈 일이 있어 이동하던 중, 마침 근처에 보물이 있길래 지나가다가 들러봤는데 웬 오크 사내가 시체로 쓰러져 있었다. 오크 사내의 시체를 뒤져보니 "모피 두른 두루마리" 라는 쪽지를 찾을 수 있었고,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모피 두른 두루마리의 내용 일부 > 

내용을 보니 연인 관계였던 두 남녀 오크가 서로에게 소중한 물건을 담아 쪽지를 주고 받은 것 같은데, 사내가 품에 안고 쓰러진 것은 상대방인 여성 오크가 쓴 쪽지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쪽지의 내용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 부분.

"뼈로 길을 표시하겠습니다."

쓰러진 오크 사내 주변을 살펴보니 아래 그림처럼 생긴 화살표 모양의 뼈가 놓여있었다. 뼈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보니 같은 모양의 뼈가 다음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렇게 뼈를 따라 계속 이동했다.

< 방향을 표시한 뼈 조각. 만약 쪽지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의미를 모른 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

 

뼈 조각을 따라 도착한 곳은 쪽지에 적힌대로 "벌판 너머 북쪽, 화산 뒤에 거대 괴수의 추락지를 굽어보는 장소" 였고, 한 젊은 여성 오크의 얼어붙은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 앉은 상태로 얼어 붙은 오크. R.I.P > 

 

오크 사내의 시체와 마찬가지로, 이 오크 여성의 시체에서도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젊은 여성 오크 시체에서 발견한 "모서리가 접힌 쪽지"의 내용 일부. 적대적인 두 부족 사이에서 사랑의 도피를 꾀했던 것으로 보인다. > 

 

내용과 상황을 종합해보면, 두 오크 연인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밀회를 하기 위해 쪽지를 주고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여성 오크가 먼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면, 표시를 보고 따라온 남성 오크가 합류해 밀회에 성공하는 계획을 꿈꿨으리라.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남자는 도중에 사망하게 됐고 여성 오크는 약속 장소에서 불을 피우고 기다리다가 땔감이 다 해 불이 꺼지게 됐고, 그대로 동사한 것 같다.

그리고 쪽지와 함께 발견한 서로의 징표였던 "행운의 부적"과 "긴울음의 첫 송곳니"를 하나로 합치면, "이루어지지 않은 갈망의 부적"이라는 고급 목걸이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두 연인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 이루어지지 않은 갈망의 부적. 최소 요구 레벨인 90 레벨 입장에서는 꽤 좋았을 법한 장비다. >

 

신선한 충격이었다. 악마와 영웅의 피와 살이 튀는 대서사시 속에 이처럼 애틋한 로맨스가 숨어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건 오리지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만 유효했고, 바쁘게 달려온 이후의 확장팩들에서는 없었을 거라고 속단했다.

물론 모든 보물들이 이 보물들처럼 짜임새있는 이야기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력 컨텐츠도 아닌 양념과 같은 보조 컨텐츠에서, 꽤 적절한 정도의 제작 비용으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게임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대형 개발사의 저력과 여유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가깝게는 게임 내 등장하는 각종 서적들의 존재부터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지간한 컨텐츠들을 경험해봤다고 생각해서 무료한 와우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 컨텐츠 덕분에 틈나는대로 가능한 많은 보물들을 찾아다녀봐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오랜 동안 잊고 있던, 하지만 와우에서 받았던 가장 큰 첫인상인 "모험"이라는 기대감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라 무척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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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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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s GOTY 2014

GLOG/Z's GOTY 2015. 1. 26. 18:09

(본래 2014년 말에 쓸 작정이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해가 바뀐 연초에 쓰는, 하지만 설 전이니까 아직 해가 가지 않았다고 우겨보면서) 2014년 게이머로서의 한 해를 되짚어보는 마음으로, Z's GOTY 2014를 정리해보도록 한다. (My GOTY라는 표현은 다분히 주관적이라고 생각돼 Z's GOTY라는 다소 객관적인 명칭으로 변경해보았다.)

매년 정기적으로 남기기 위해 올해부터 별도로 Z's GOTY라는 폴더를 신설했고, 폴더를 분리한 김에 지금까지는 한 해를 통틀어 1~2 작품만 꼽던 것에서 플랫폼을 세분화 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작품들을 기록하기로 한다.

 

데스크탑 - 오프라인 부문

 

데스크탑 - 온라인 부문

 

콘솔 - 거치용 부문

 

콘솔 - 휴대용 부문

 

모바일 부문

 

위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인 여건 상 데스크탑 부분에서 꼽은 작품들 정도가 그나마 한 해 동안 접해본 게임들의 거의 전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한 자리에 앉아서 장시간 플레이해야 하는 종류의 게임은 거의 손대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휴대용 콘솔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처음에 정리할 때는 한 해 동안 플레이한 게임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분야를 나눠놓고 보니 그래도 이런 저런 종류의 게임들을 해온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한 기분도 든다. (물론 정말 다작을 즐겨오시는 분들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이쯤에서 고작 2회차지만, Z's GOTY 공식 질문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보도록 한다.

 

"2014년, 여러분의 GOTY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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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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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메인 캐릭터 한 기가 100 레벨에 도달했고, 어제는 드디어 성장 구간 퀘스트 라인의 서사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가로쉬 vs 스랄의 마시니마가 성장 구간 서사의 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레노어의 전쟁군주들(이하 드군)에 대해 본격적으로 정리를 해볼까? 라고 마음을 먹어봤었는데 사실 아쉬란을 좀 맛봤다는 거 말곤 엔드 컨텐츠 쪽을 손도 안대서 본격적인 정리는 차일로 미루고, 약간의 감상을 이 글타래에 덧붙여볼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건너뛰신 것으로 알고 있는(..) 판다리아의 안개가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실험의 장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실험의 결과물들이 이번 드군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그것들을 정리라기엔 그렇고, 언급?정도로 꺼내볼까 합니다.

1. 거점의 변화

와우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구성을 매우 오랫동안 지속해왔습니다. 그 대도시가 아제로스에서 아웃랜드, 노스렌드, 아제로스, 판다리아로 그 때의 새로운 확장팩 주 무대에 맞게 옮겨갔을 뿐 "대도시에서 사람을 모은다"는 구조는 항상 같았습니다. (물론 드레노어에서도 아쉬란에 양 진영의 새로운 도시?가 추가되었지만 드군의 핵심인 자체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쉬란의 진영 도시는 상주하는 곳이 아닌 가끔 들르는 곳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주둔지라는 개인 공간으로 플레이어들을 밀어넣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주둔지에서 단지 "채팅 채널"을 통해 소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기능적인 장치로서의 대도시가, 단지 그 접점을 만들어주기 위한 이유와 "대도시"라는 컨텐츠의 분위기를 위해서라고 하기엔 MMO의 필연적 숙명과도 같은 "PC가 빠글거리면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성능적인 부정적 경험"이 꽤 큰 걸림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둔지는 그 걸림돌을, 개인화 된 공간에서 공개 채팅을 통한 제한된 교류로 소통하고 필요할 때에만 서로의 주둔지에 방문해 기능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아무리 각각의 주둔지 건물들이 대도시의 기능들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 한 명의 주둔지는 건물 슬롯(소형/중형/대형으로 나뉜 건물을 지을 제한된 장소)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건물을 다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내 주둔지에 없는 건물의 기능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두 가지로 극복할 수 있는데, 하나는 부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주둔지에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후자가 훨씬 용이하고요.

이같은 시스템의 변화는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태양노래 농장을 통해 이미 실험된 바 있습니다.
퍼시스턴트 월드에 배치된 위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입장하는 개인 인스턴스 공간.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자연에서 채집하는 방식이 아닌, 한 곳에서 스스로 생산하는 농작물. 바로 이러한 농장의 성격이 확장된 정규 컨텐츠가 주둔지라고 생각합니다.


2. 강화된 서사 연출 도구

이 글타래의 본문에서 Voosco 님이 지적하신 "임팩트와 임팩트 사이에 도무지 각인되지 않는 중간 이야기"라는 부분에 대해, 저는 와우의 기본이 되는 "퀘스트 시스템의 텍스트를 통한 이야기 전달 방식"이 가지는 한계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사건들은 대체로 단순히 퀘스트 수락/완료 텍스트를 통해 전달된 것이 아니라 퀘스트 플레이 자체를 통해 플레이어가 경험하면서 기억한 것들이고,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향상된 연출 기법들(위상변화라거나, 리얼타임 컷씬이라거나, 마시니마라거나)을 통해 전달된 것입니다.
이중에서 "플레이 자체를 통한 경험"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탈라도르의 샤트라스 전투 이벤트와 나그란드의 가로쉬 전투 이벤트에 사용된 "네러티브 이벤트 시스템(가칭)"이 그것입니다.
이 네러티브 이벤트는 게임 화면 우측에 미니맵 아래 쪽에 나열되는 퀘스트 알리미들보다 위에, 퀘스트들과 구분된 다른 표시로 "1단계. ㅇㅇ하기, 2단계. ㅇㅇ하기"같은 진행 단계를 표시하면서 사건의 진행에 따른 상태의 변화와 다음 목표를 알려줍니다. 리치왕의 분노 확장팩 시절 노스렌드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던, "NPC가 없어도 퀘스트가 완료되고 수락되는 시스템"이나, 위상변화를 통해 퀘스트NPC가 퀘스트를 처음 나한테 줬던 위치 말고 수행을 완료한 장소에 나타나 되돌아가는 동선을 없애는 방식들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가 어쩌면 이 네러티브 이벤트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이벤트 시스템은 새로운 시스템이라기엔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시나리오"라고 불리던 애매한 컨텐츠를 개량한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
시나리오라는 것은 처음 홈페이지에 소개됐던 바에 따르면 탱딜힐 클래스 구성에 얽메이지 않고 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힘을 합쳐 특수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멋진 경험을 줄 것이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만, 판다리아의 안개에서 실제로 모습을 드러낸 시나리오는 그냥 탱커나 힐러 없이 3딜러로 깰 수 있는 가벼운 인스턴스 던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I 키(지금은 Ctrl+I 키)로 열 수 있는 던전 도우미에 버젓이 던전/공격대 찾기와 함께 시나리오가 같은 분류로 배치되어있기까지 했습니다. 그냥 캐쥬얼 던전? 같은 형태였죠.
그런데 위에서 네러티브 이벤트라는 가칭을 붙인 드군의 서사 연출 도구가, 사실은 이 시나리오와 진행 방식과 인터페이스 표현이 90% 정도 동일합니다. 게다가 처음 시나리오를 소개했던 문구와 굉장히 흡사하게, 정말로 "퀘스트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어느새 근처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경험"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입장"이라는 개념도 없이 말이죠. 그리고 판다리아의 시나리오는 "굳이" 반복 플레이를 유도했습니다. 결국 던전이었으니까 다른 던전들과 똑같이 플레이되길 희망했던 건가 싶습니다. 던전 업적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시나리오 업적들이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드군의 시나리오는 1회성입니다. 짧고 강렬한 단 한 번의 서사적 경험을 전달한다! 라는 본래의 의도를 이제야 알맞게 찾은 느낌입니다.


3. 일일퀘스트를 통한 서사 전달

판다리아의 안개에서는 정말 굉장히 실험적으로, 성장 구간 퀘스트 라인의 중간에 퀘스트를 딱 잘라버리고, 일일퀘스트와 평판 달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평판 수치에 도달하면 다시 퀘스트 라인을 재개해줘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썩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것 때문에 플레이어들 불만도 엄청났고 이탈율 또한 엄청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와우는 퀘스트 쭉 하면서 만렙찍고 퀘스트 다 하면 다음 확장팩까지 쉬는 게임일테니까요. (웃음)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플레이타임을 "날짜 단위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제작자 측의 굉장한 이점이자 플레이어 측의 굉장한 단점이 발생하는데요, 사실 저는 여기서 이 부분 보다는 좀 다른 쪽에 집중했었습니다.
바로 "일일퀘스트의 서사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저는 판다리아의 이 실험은 꽤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대격변까지의 일일퀘스트는 전적으로, 원래는 노란색 일반 퀘스트를 다 하면 받을 수 없는 시스템 보상을 받게 해주는, 하루 한 번씩 부여되는 파란 일일 퀘스트로 "일당을 챙겨받는 노동"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런데 판다리아의 저 실험은 그 노동에 서사적 당위성을 입혀서, "이방인인 너희가 우리에게 얼마나 우호적인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우리가 필요한 골치아픈 일들을 처리해주면 너네 하는 거 봐서 니가 해달라는 걸 알려주든지 말든지 할게"라면서 서사의 일부로 녹여냈습니다. 그리고 만렙 달성 이후에 "할 게 없으니까 이거라도 해볼까?"라거나 "보스가 드롭하는 확률 보상이 아닌 내 노력으로 얻는 고정 보상을 얻자!"라면서 시작하는 평판 작업을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핵심 요소로 끌어올리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드군에서는 판다리아에서의 일일퀘스트가 플레이어들에게 거부감을 주던 그 강제성을 배제하면서, 서사적인 사용은 취하는 꽤 영리한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드레노어의 위협 요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계속 된다"라며 끊임 없이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일일 퀘스트의 목표들을 설정했고, 그 덕분에 세계의 위기감이라는 긴장을 성장 퀘스트 라인 종료 이후에도 계속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개인 단위의 일일 퀘스트와 공격대 단위의 일일 퀘스트 두 개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취향에 맞게 한 쪽을 선택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파란색 느낌표를 전부 제거해서 보상을 챙겨야 했던 그야말로 "일퀘의 노예"로 살던 예전의 방식보다, 플레이어에게 선택권을 주어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게 하는 꽤 멋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외에도 아쉬란의 공식 개발 노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영원의 섬 일일 퀘스트 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야외 전장인 아쉬란을 만들 수 있었던 이야기 들도 있지만, 글을 짧게 쓰는 재주가 없어서 쓰다보니 이미 또 글이 길어진 것 같아 많은 분들에게 죄송스러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PvP / PvE 아이템 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지만 이는 따로 빼도록 하겠습니다..)

여하튼 결론은, "판다리아의 안개가 와우 서비스 역사에서 전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라는 점이고 개인적으로는 이 같은 도전적인 실험들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의 드군의 핵꿀잼이 가능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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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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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기 때문에, 게임 속에 다양한 직업(클래스)군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을 벗어나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통해, 각 직업군 플레이어들은 서로 다양한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이 같은 게임 바깥 세계에서 형성된 직업 중심의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요즘은 의미가 많이 달라졌지만 협동 조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던 중세 시대의 "길드"와 상당히 유사한 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와우의 여러 클래스 길드(게임의 길드 시스템 말고 앞서 설명한 협동 조합같은 그 길드) 중에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은 아마도 사냥꾼 길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직업군들의 연합이 갖는 공통적인 활동으로는 대체로 효율적인 역할 수행에 대한 열띤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는 것이겠지만, 그들에겐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물론 공상을 좀 더 펼쳐보자면, 마법사나 흑마법사의 경우는 다들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이런 저런 실험들을 하고 학회(..) 같은 곳에서 갑론을박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무척이나 직업 성격에 어울리는 모습일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은 거의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직업별 전용 퀘스트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악명 높은 직업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각 직업군 모임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었죠. 대표적으로는 흑마법사의 소로스의 공포마 퀘스트를 꼽아볼 수 있겠네요. (무려 남들 다 타는 말을 타려는 데 엄청 힘겨운 던전 내 퀘스트를 연속으로 수행해야 했습니다. 단지 그 "간지 폭발하는 흑마 전용 공포마"를 타기 위해서 말이죠!)

여기서 더 나아가 사냥꾼들은 그들 직업군만이 같는 고유의 "펫" 이라는 존재 때문에 더욱 더 끈끈하게 유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차적으로는 어떤 펫이 좋아요부터 시작해서 그 펫을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해요 라는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은 물론이고, 월드 전역에 아주 희귀하게 등장하는 야수의 경우에는 재생성 주기까지 관리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어메이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냥꾼 길드의 희귀 야수 스케쥴 체크는 한 때 거의 실시간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었기 때문에 희귀 야수를 동료로 테이밍하려는 사냥꾼들과 그 정보를 훔쳐 듣고(!) 희귀 몬스터 처치 업적을 하려는 타 직업군 간의 치열한 갈등 같은 것들도 야기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사실 저도 희귀 몬스터 처치할 때 야수들의 경우는 사냥꾼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추적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사냥꾼 여러분..)

사냥꾼이라는 우리말로 옮겨진 이 직업의 영문명은 Hunter 입니다. 그리고 협동 조합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Guild 이고요. 그래서 사냥꾼 협동 조합은 결국 Hunter Guild가 되는데, 이 단어는 콘솔 게이머들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일 것입니다.
바로 몬스터헌터에서 플레이어인 헌터들이 소속된 단체이자 그들에게 일감을 전해주는 존재인 길드가 바로 헌터 길드이기 때문입니다.

몬스터 헌터에서 시나리오 라이터가 설정한 의도된 헌터 길드라는 존재의 성격과, 와우의 플레이어들이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형성한 헌터 길드의 성격이 서로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점은 "사냥꾼(헌터)"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의 출발점이 서로 닿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캡콤의 몬스터헌터 시나리오 라이터가 생각한 사냥꾼과, 블리자드의 와우 클래스 디자이너가 생각한 사냥꾼과, 두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생각한 사냥꾼은 결국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됐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이렇게 서로 같은 이미지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와우처럼 디자이너가 의도한 플레이를 넘어서 그 이상의 역할 수행을 플레이어들이 게임 밖에서까지 자발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두서없는 이 글을 마쳐볼까 합니다.

딱히 결론이랄 것은 없지만 굳이 정리해보자면.. 냥꾼님들 스고이데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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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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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런치리스의 남자(점심을 거른다는 의미입니다...)인 저는 점심 시간을 이용해 꿀 같은 아제로스 대탐험을 즐겼습니다.(와우했다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감상을 SNS를 통해 이렇게 남겼습니다.

와우를 다시 하면서 느끼는 건, 와우의 퀘스트가 와우라이크들과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퀘스트 하나 하나의 설계가 아니라 그 퀘스트들을 통해 플레이어가 따라가는 지역 전체에 걸친 이야기 흐름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중요한 건 플레이어 서사였다.

 - 원문 링크: https://twitter.com/zerasion/status/529485062916427777

포럼의 다른 곳에서도 "플레이어 네러티브"라는 주제로 논의된 내용들이 있기도 하고, 사실 많은 네러티브 관련 게임 디자이너 분들께서는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한 내용이라 이렇게 함축적으로만 적어도 그냥 적당히 리마인드 되실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정리를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사우 님의 권유가 있어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또 재능 부족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 글로 전하는 일감, 퀘스트

사실 와우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텍스트를 이용한 서사 전달이라는 건 "MMORPG에서 서사 전달이라는 것 자체가 희박했던 시절"에는 꽤나 효과적인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장르에서 그래왔듯, "긁 읽기"말고 다른 것들이 게임에서 더 중요해지면서, 플레이어들은 글 읽는 시간을 아까워했고, 또 긁 읽기 자체를 귀찮고 성가셔하게 되면서 더 이상 텍스트 전달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항상 내게 주어지는 일감"이라는 존재 역시 "MMORPG에서 할 일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했던 시절"에는 꽤나 효과적인 플레이 가이드 방식이었습니다만, 이 역시도 수 많은 포스트 와우 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퀘스트 = 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널리 확산될만큼 비효과적인 컨텐츠가 되어 버렸고요.

그래서 포럼에 옮겨지기도 했던 해외의 사례 (와우의 퀘스트 서사는 죽었다)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이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한 컨텐츠가 아닌 것처럼 여겨졌고, 많은 분들이 이에 고개를 끄덕이셨을 겁니다.

그리고 사실, 새로운 확장팩인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가 발매되기 전에 몸풀기 차원에서 와우에 복귀한 저조차도 와우를 오래 플레이한 탓도 있을 것이고, 와우라이크 게임들을 많이 봐 온 탓도 있을 것이고, 게다가 게임개발자로 MMORPG를 수 년간 개발해 온 탓도 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와우의 퀘스트 시스템이 무척이나 "뻔한 요소"처럼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하나 하나를 곱씹어 봤을 때, "이건 그냥 ㅇㅇ 잡아와라, ㅇㅇ 가져와라일 뿐이잖아? 전혀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요. 물론, 와우를 어느 정도 플레이 한 소위 "와우저"라고 분류되는 플레이어들은 와우의 퀘스트는 결국 심부름일 뿐이라는 위대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고는 하지만, 기라성같던 그런 느낌이 너무 많이 퇴색해버린 기분이 들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습니다.

 


2. 일감 + 일감 = ??

그런데 오늘 저레벨 얼라이언스로 동부내륙지 퀘스트 후반부를 플레이하던 도중 제법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했습니다.
수 년 간 와우를 하면서 수백 수천 개의 퀘스트를 클리어해왔고, 가급적 거의 모든 텍스트를 읽으면서 진행했음에도 모든 퀘스트를 다 기억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몇몇 퀘스트 시리즈들이 있었는데, 오늘 플레이했던 이 퀘스트 묶음과 기억에 남는 과거의 퀘스트 묶음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 하나를 알아차리게 됐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흐름" 입니다.

이미 출시된 지 10 년이 다 된 와우의 퀘스트 하나 하나는, 찬찬히 뜯어보면 생각보다 정말 특이할 게 없는 평범한 "그냥  퀘스트"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와우라이크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어쩌면 더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가진 퀘스트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와우의 퀘스트를 10년 동안 찬양하고 있던 걸까요?
저는 위에서 말한 "이야기의 흐름"이 그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와우의 서사 구조는 1레벨부터 최고 레벨까지 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디아블로와는 다르다는 거지요. 대신 이야기를 어떠한 단락별로 끊어서 구성하는데, 그 단위가 "지역"입니다. 예를 들어 듀로탄에서 플레이하던 흐름과 불모의 땅에서 플레이하던 흐름 사이에, 서사적인 연결 고리가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그저 듀로탄의 처음과 끝이 한 단락이며, 다음 지역과의 연결은 불모의 땅에 아무개한테 가면 당신이 할 일이 좀 더 있을 거라는 "소개"의 정도에 그칠 뿐입니다.
대신, 지역 안에서의 흐름은 (물론 지역마다 또 퀘스트 디자이너의 역량 또는 습성마다 다를 수 있지만) 명확한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진행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와우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덕분에 플레이어가 전체를 인지하기 위해 처음과 끝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플레이타임 기준 상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기 때문에 "며칠 전에 시작했던 처음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단위의 크고 작음은 중요한 내용은 아니고 부차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본론을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와우의 퀘스트 공식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감 + 일감 ≠ 2일감
일감 + 일감 = 이야기

와우라이크 게임들의 퀘스트들을 플레이하다보면, 직전에 진행했던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주거나 빌미를 제공한다거나 명분을 주는 일이 없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즉, 각 일감과 일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져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앞에서 해온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느껴질 수 있고, "의미 없는 노동"을 했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플레이어에게 제공할 여지가 됩니다.
하지만 와우의 지역별 메인 퀘스트 묶음은 굉장히 뚜렷한 한 가지 이야기를 주제로 "마치 책을 앞 장부터 한 장씩 읽어가듯" 퀘스트 단위별로 이야기를 조금씩 진행하면서 플레이어가 어떤 "서사"의 한가운데 빠져들게 됩니다.
아마도 이는 접근 방식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러 개의 퀘스트를 말이 되게 이으는 것"과 "한 개의 큰 스토리를 여러 단계로 작게 나누는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결국,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은 미시적으로 낱개의 퀘스트 디자인은 유사할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통일된 흐름을 가질 수 있는 지 없는 지로 나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3. 일을 하는 장소, 지역

시스템과 시스템, 컨텐츠와 컨텐츠, 시스템과 컨텐츠들이 서로 잘 맞물리는 것이 와우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은 많은 게이머와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인정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와우의 퀘스트는 그 중에서도 이런 맞물림이 가장 빛을 발하는 대상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퀘스트 디자이너분들이 수백 개의 퀘스트를 그야말로 "찍어내다보면" 많이 놓치게 되는 것이, 다른 컨텐츠와의 연계성입니다. 시스템적으로는 "어디에 갖다 놔도 쓸 수 있는 범용적인 퀘스트 구조"를 제작하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컨텐츠적으로는 반대로 "아까 그거나 이거나 똑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위험성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구조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아까 그거, 거기의 그거와는 다르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 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와우는 이를 "지역과의 강한 연계"로 멋지게 해결하고 있습니다.

레벨 디자이너 또는 레벨 아티스트들은 게임의 이야기에 맞으면서도 시각적, 그리고 경험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그들 업무의 목적일 것입니다. 그리고 퀘스트 디자이너는 종종 우선 순위에서 밀려 "이미 만들어진 레벨에 어떻게든 맞는 이야기를 짜내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와우의 지역별 메인 퀘스트 묶음은 처음부터 협업을 했다고 강하게 생각될만큼, "이야기에 필요한 환경 구성"이 아름다움 속에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령 제가 오늘 점심 시간에 플레이 했던 동부내륙지의 얼라이언스 퀘스트 묶음의 경우, (물론 엄청 에픽한 서사는 아니지만) 처음에는 소소한 잡일(물론 그들은 당장 급하니 이것부터 해주세요라고 둘러대긴 했지만)부터 시작하긴 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트롤들이 이 땅에 소환하려고 하는 강력한 영적 존재를 저지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다보니 이와 관련된 주술과 관련된 소품들이 퀘스트 목표에 들어가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아예 주술적 건물인 "사원"들이 지역 곳곳에 여러 개 배치되어야 합니다. 아마 단지 "퀘스트에 필요하니까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다면 보통은 거절당했을 것이고, 반대로 그냥 넣었다면 지역 구성이 서사적으로 설득력을 크게 잃었을 것입니다. 그 지역의 설정에 서사적으로 어울리면서 퀘스트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 효과적인 구성을 아마도 레벨 디자이너와 퀘스트 디자이너와 레벨 아티스트가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오늘 날 게임 상에 나타난 것처럼 지역과 이야기가 잘 맞물릴 수 있던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4. 퀘스트 묶음의 "소용돌이"화

글을 짧고 간결하게 쓰는 능력이 부족해 주절주절 글이 길어진 것 같아 요약을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이토 준지 작가의 호러 만화 "소용돌이"를 알고 계신가요? 소용돌이는, 일본의 어느 외딴 마을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알 수 없는 현상들이 마을 곳곳에서 일어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마을 전체가 소용돌이가 되어 빨려들어가게 된다는 내용의 공포 만화 입니다. 제가 이토 준지 작가의 만화 중에서 유독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연관 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알고보니 결국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낸다"라는 구조 때문입니다.
와우의 지역 퀘스트 묶음들도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이걸 왜 하는 건지 왜 시키는 건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도 잘 알 수 없는 잡일 같은 걸로 시작해서, 나중에 어떤 막중한 임무 같은 걸 받았을 때 아까 했던 잡일이 이 임무의 밑거름이 되는 그런 경험을 심심치 않게 겪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소림사에 가면 왜 시키는 지 알 수 없는 허드렛일을 하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동들이 무공 수련을 돕고 있었다는 설정의 무협물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와우의 인상적인 퀘스트 묶음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손에 꼽는 오리지널 얼라이언스 진영의 아버지와 아들 퀘스트나 윈저 경 호위 퀘스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호드라 그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탓에 다른 퀘스트를 떠올리곤 합니다.
아마 많은 노스렌드의 영웅들이 기억하고 계실, "분노의 관문"과 관련된 포세이큰(언데드)의 역병 퀘스트 묶음입니다.


노스렌드에 막 도착한 70 레벨의 플레이어는, 시작점에 따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언더시티에서 비행선을 타고 도착한 동쪽에서 시작하는 호드 진영의 플레이어들은, "포세이큰의 역병" 퀘스트 묶음을 수행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지역에 도착한 포세이큰들이 이웃하게 도착한 얼라이언스와 분쟁을 벌인다거나, 노스렌드의 토착 생물들을 파악하고 연구를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진행하면서 크고 작은 야생 동물부터 드래곤이나 납치한 얼라이언스 포로, 심지어 같은 호드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역병 제조에 박차를 가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플레이어 캐릭터들이 열심히 노동한 결과들 덕분에 이뤄낸 성과고요. 그렇게 열심히 역병을 만드는 데 성공한 플레이어는, 이후 포세이큰과는 동떨어진 다른 이야기 속으로 지역을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병은 잠시 기억에서 잊혀지게 되죠.
그러다 마침내, 분노의 관문이라는 곳에서 아래와 같은 장엄한 영상이 펼쳐집니다.

분노의 관문 동영상 링크: http://www.youtube.com/watch?v=2oDAIJIL6H4

여기서 포세이큰이 등장하는 시점에, 역병 퀘스트를 수행했던 캐릭터들은 알아차리게 됩니다.
"아! 저거 내가 만든 역병이구나!"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와우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서사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역병이 이렇게 멋지고 강렬하게 보이고 있어!"라는 기분이었죠.

플레이어의 영향력이 게임 세계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 와우라는 게임의 구조 상, 이야기에 의미있는 어떤 일을 플레이어가 해냈다는 느낌을 갖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을 줬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야기가 다시 길어졌지만, 결국 이것은 다른 문화컨텐츠에서 사용하는 "복선"과 유사한 매커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추리물에서 결과를 미리 알면 맥이 빠지는 것처럼, 복선도 "이것이 복선입니다!"라고 표시되면 굉장히 매력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처음 기반작업과 같은 일들이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미래의 일을 암시하지 않는 것은 복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과거의 복선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될 때,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더 큰 쾌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대단히 길)게 와우의 퀘스트 구조가 가지는 강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덕분에 쉬어가는 판다리아의 안개를 넘어 힘주어 자신있게 개발했다고 말하는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에서는 또 어떤 지역과 이야기들로 이런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능력이 부족한 자의 긴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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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볼만한 토픽:

[GDF] MMOG의 집단서사: http://gdf.inven.co.kr/t/mmog/67
[GDF] MMO의 연쇄 퀘스트는 죽었는가 http://gdf.inven.co.kr/t/mmo/498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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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GDF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GDF 링크: http://gdf.inven.co.kr/t/p3p-vs-p4g/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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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GS(Tokyo Game Show, 동경게임쇼)를 겨냥한 듯한 한 티저 무비가 공개되어 많은 게임 팬들을 설레게 했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페르소나5" 였습니다.

 

 

게이머들이라면 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어느덧 다섯 번째 편이 개발중인 이 페르소나 시리즈는 아틀러스 사의 유명 RPG인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외전 같은 작품입니다. 진여신전생은 꽤 무거운 주제와 배경으로 심도 있는 턴제 전투와 악마 수집을 기반한 정통 JRPG(스토리를 따라 진행하는 일본식 RPG) 장르입니다. 여기서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전투와 수집 시스템을 승계하고 밝은 배경과 동성 또는 이성의 동료들 사이의 감정선에 주목하도록 만든 작품이 바로 페르소나 시리즈 입니다.

저는 본편과 페르소나 시리즈 중에서 "진여신전생3 녹턴(이하 녹턴)", "페르소나3 포터블(이하 P3P)", "페르소나4 더 골든(이하 P4G)"의 세 작품을 플레이했으며 이 중 녹턴은 이런 저런 이유들로 클리어하지 못했지만 P3P와 P4G는 노멀 클리어까지는 달성했습니다. 그 중 P3P에서 P4G로 넘어가면서 변경된 게임 디자인 요소들이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페르소나 신작이 공개도 되었으니 이참에 그 두 작품을 서로 비교해볼까 합니다.

 

 

 

 

 

※ 덧붙이기: 이 글은 페르소나라는 단일 타이틀에 대한 디자인 또는 재미 유발 부분에 대한 분석이 아닌 P3P와 P4G라는 두 작품 사이의 차이점에 대한 비교를 다룰 예정입니다. 따라서 페르소나가 어떤 게임인 지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remarkablue 님의 블로그 글 "[PSP] 페르소나 3 포터블(http://blog.naver.com/bfdan/40107539990)" 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PS2판 페르소나3와 PSP판 페르소나3포터블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한 부분도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1. 진여신전생과 페르소나

 

앞서 소개하는 부분에서 페르소나 시리즈는 진여신전생 시리즈의 승계 작품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뿌리부터 정리하는 차원에서 게임 디자인 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조금만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계승된 부분입니다. 시스템 상으로는 전투 규칙 전반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으며 컨텐츠 상으로는 등장하는 악마(몬스터 또는 동료)와 PC 또는 악마가 사용하는 스킬들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페르소나를 구성하는 커다란 두 요소가 전투와 커뮤니티라는 것을 감안할 때, 전투에 해당하는 요소들은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과 다른 부분은, 전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들입니다. 심지어 장르마저 다릅니다. 거시적으로 RPG라고 묶을 수도 있겠지만 페르소나는 RPG라고 보기도 연애시뮬레이션이라고 보기도 애매한 중도적인 작품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2. 페르소나의 재미

 

그렇다면 페르소나가 추구하는 재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페르소나라는 게임의 핵심은 "게임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청소년기의 불안한 자아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제목부터 페르소나라고 지었듯이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마을에 전학 온 고교생 체험 놀이"라는 주제 자체가 페르소나의 핵심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형식을 빌다"라는 부분을 위해 페르소나가 선택한 게임 요소로는 앞서 언급한 전투와 커뮤니티라는 두 개의 큰 요소가 존재하는데요, 먼저 각각의 요소들은 전투의 경우 턴제 JRPG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커뮤니티의 경우 연애시뮬레이션 장르의 정통을 계승하고 있어 각 요소들이 모두 심도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의 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맞물리는 콜라보레이션이 페르소나라는 게임이 다른 게임들과 차별점을 두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P3P vs P4G: 게임 디자인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페르소나 시리즈의 정체성은 점점 고유한 색을 찾아갔고, 주제와 요소들은 단단해졌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페르소나의 재미를 구현하기 위해 P3P와 P4G는 각각 어떤 방법들을 선택했고 그 둘은 어떻게 다른 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게임 디자인 요소 입니다.

(1) 배경 마을

P3P에서는 전투 공간을 제외하면 모두 2차원 이미지로 된 공간에서 커서 포인터만 옮겨서 돌아다니고 행동을 취합니다. PSP의 아날로그 스틱(?)으로 포인터를 옮길 수 있으며 특정 버튼(아마도 X 버튼이었나)을 누른 채 이동하면 포인터를 아주 빠르게 옮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이미지 영역에 포인터가 위치하면 그에 해당하는 메뉴가 나타나 빠르게 포인터로 이미지를 훑다가도 행동 영역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마을 광장컷이 한 장의 그림으로 표시되고 포인터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위에 올려놓으면 화면 모퉁이에 "대화하기(O)" 메뉴가 나타나는 식입니다. 배경 그림은 스크롤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한 화면 안에 표시해야 하는 사이즈의 제약은 없습니다.

반면 P4G에서는 비전투 공간까지 모두 3차원으로 모델링했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이하 PC)가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작할 수 없는 단순 연출을 위한 공간까지도 모두 3차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3차원 공간의 퀄리티는 마치 플레이스테이션2(이하 PS2) 시절 초창기에 출시되던 여느 3D 게임들의 배경 수준에 그치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게임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마저 듭니다. PC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서 NPC들의 로밍 등을 통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플레이어에게 현장감을 더 크게 제공하기 위해서였나?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의도로 보기엔 오히려 P3P의 방식보다 불필요한 이동 소요 시간도 길어지고 공간감도 오히려 해치는(그림보다 투박한 모델링이라서) 느낌이었기 때문에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최근에 remarkablue 님의 리뷰를 보고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본래 PS2의 페르소나3도 P4G처럼 3차원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PSP의 사양에 맞춰 배경을 이미지화했던 것이기 때문에, PSP에서 비타로 기기가 업그레이드 되면서 본래의 3차원 공간을 그저 되살렸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환경 표현에 있어 정상급 기술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크라이 엔진을 사용했다고 하던데 그 결과가 P4G와 같다는 건 무척이나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전투 속성의 깊이

본래 P3P에서는 물리 속성이 참격, 타격, 관통의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따른 동료 캐릭터들의 기본 공격 속성도 좀 더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고, 악마들과 아군 페르소나들의 내성도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참격과 관통은 무효이며 타격은 반사하는 식으로 설정되기도 했었죠.

그런데 P4G에서는 이같은 물리 속성이 "물리"라는 한 가지 속성으로 통합되었습니다. 분명 전투 요소 간소화라는 좋은 방향이었다고 생각됩니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전히 P3P처럼 각각의 공격 타입에서는 참격과 타격과 관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는 점입니다. 분명 기술 아이콘은 참격/타격/관통이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 내성 시스템이 "물리무효/물리반사" 등으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아무런 구분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게다가 동료들의 기본 공격 속성에서도 참격/타격/관통이 구분된 것처럼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모두 똑같은 물리계였기 때문에 주된 특징이 상쇄되었고, 이를 기본 스킬 구성을 다르게 가져가는 식의 서브 타입 차별화로 무마하려 했지만 P3P 때와 마찬가지로 "특정 역할에 최적화된 동료"가 존재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여의치는 않았습니다.

(3) 던전의 다양화

P3P의 던전 플레이는 타르타로스라고 불리는, 일반인들에게는 시계탑처럼 보이는 곳 내부를 끝없이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스토리 상에서 등장하는 특수한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모든 전투는 타르타로스에서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매번 층에 입장할 때마다 길이 매번 바뀌는 랜덤 던전 생성 방식을 사용하긴 했지만, 전투 공간이 항상 똑같다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단조로운 인상을 주고 쉽게 질리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반 난이도에서 중반 무렵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전투 패턴마저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전투의 지루함은 배가되게 됩니다.

반면에 P4G는 컨텐츠 구성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무척 다양한 테마의 던전을 여러 개로 구성합니다. 마을, 고성, 사우나, 비밀 군사 기지, 레트로 게임 던전(...), 천계(..;), 마계화된 마을(;;;;;) 등으로 무척이나 각양각색입니다. 그리고 P3P와 마찬가지로 각 층에 입장할 때마다 구성이 바뀌는 랜덤 생성 방식을 사용하고 있고요. 그리고 스토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각 던전의 끝에서는 동료를 만나게 되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동료의 특징과 맞는 테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납득할만한 명분을 많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게임 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차 다음 단계의 던전이 개방되는 방식으로 컨텐츠 소비를 조절하고 있는데요, P3P의 경우 단일 던전이기 때문에 새로운 던전을 오픈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올라가는 길을 막아두었다가 해당 날짜가 되면 상층부를 단계별로 열어주는 방식으로 조절하고, P4G의 경우는 한 던전을 클리어한 뒤 해당 날짜가 되면 새 던전을 오픈해주는 방식으로 조절합니다. 양쪽 모두 이미 플레이했던 던전을 다시 플레이하는 것은 가능하며, 심지어 퀘스트 등으로 권장하기도 합니다.

(4) 전투의 강제성

P3P에서 동료를 만나는 방식은 전투와 관계 없이 특정한 날짜가 되면 강제 이벤트를 통해 진행됩니다. 스토리를 감상한다는 느낌으로 여유롭게 이벤트를 감상하면 됩니다. 반면에 직접적으로 플레이어가 개입해 자발적으로 동료를 찾아나선다거나 하는 느낌은 덜하게 됩니다. P3P에서 동료를 만나는 건 마치 지나가다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일종의 해프닝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투를 해야하는 당위성은 중간 중간 등장하는 허들 같은 이벤트 전투에서 승리하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이며, 이벤트 전투에서 패배하면 Game Over가 됩니다. 이벤트 전투에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PC 파티를 성장시켜두면 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큰 압박감 등을 조장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P4G는 마을의 누군가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PC일행이 던전으로 찾아가 동료가 될 인물을 구출해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앞서 던전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던전의 플레이 목적 자체가 새로운 동료의 영입에 있으며 심지어 마감 기한이 있기 때문에 지정된 날까지 동료를 구해내지 못하면 게임 진행이 실패하게 됩니다. 따라서 "언제까지 이걸 해내야만 한다!"라는 조건 자체가 굉장한 압박감으로 작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방학숙제를 주는 모양새가 되어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줍니다. 페르소나는 도입부에서 설명드린대로 전투와 커뮤니티가 게임을 이루는 두 축이기 때문에 여타 고전적인 JRPG처럼 전투에만 모든 노력을 할애할 수 없고, 그 경우 재미가 많이 감소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전투의 강도 높은 강제라는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전투 컨텐츠 위주로 플레이하려는 플레이어들에게는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을 자주 불러옵니다.

다만 이같은 전투 강제를 위해 추가적으로 조치한 부분이 있다면 피로도 부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3P에서는 하루 동안 전투할 수 있는 권장 시간이 존재합니다. MO 또는 MMO 게임들에서 익히 보아온 피로도 시스템과 무척이나 유사한데요, 그 시간을 넘겨 타르타로스에서 전투를 지속하게 되면 PC가 "피로" 상태에 빠집니다. 피로 상태에 빠진 PC는 피로회복제를 마시지 않는 이상 며칠 동안 아무런 방과 후 이벤트를 플레이할 수 없게 되어 커뮤니티 관리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P4G에서는 오퍼레이터가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알려주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피로도같은 개념이 없기 때문에 HP/MP 회복제만 충분하다면 처음 입장하자마자 클리어까지 주파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도 이를 활용해 새 던전이 열리면 최단 회수 안에 어떻게든 클리어를 먼저해놓고, 다음 던전이 열릴 때까지 여유롭게 커뮤니티 플레이를 하면서 진행했습니다. 마치 방학 시작과 동시에 숙제를 미리 다 끝내고 마음 편하게 방학 생활을 즐기는 패턴처럼요.

(5) 아이템의 처리

P3P에서는 비교적 무쓸모한 잡템이라는 존재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사용 효과를 가진 아이템이 아닌 경우, 무기 제련 재료이거나 퀘스트 아이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의 입수는 경찰서에서(..) 주기적으로 새 품목이 나오면 그걸 돈 주고 사서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간소하고 고전적인 아이템 처리 방식을 사용했다고 생각됩니다.

P4G에서는 도무지 어디에 쓰는 지 알 수 없는 무쓸모한 잡템이 대거 등장하게 됐는데요, 이 잡템들의 사용처는 다름 아닌 대장장이에게 주고 레시피를 얻는 것입니다. 새로운 아이템을 시간이 지났다고 상인이 갑자기 "새 물건이 들어왔어!"라면서 팔기 시작하는 대신, 새로운 던전에서 구해온 재료들을 통해 대장장이가 "이 재료라면 이런 걸 만들 수 있어!"라면서 레시피를 열어주는 식입니다. 이 부분이 묘하게 몬스터 헌터의 오마주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내 플레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컨텐츠가 추가되는 기분이라 상당히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6) 비동기식 간접 멀티플레이

P4G에서 새롭게 등장한 시스템이며 제목은 임의로 붙인 가칭이고요, 통칭 "헬프기능"으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아틀러스 사의 이전 작품 "캐서린"을 보면, 온라인 연결 시 같은 선택지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 지 통계 그래프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P4G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해야할 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예를 들면 휴일이라거나, 평일 방과 후 라거나)이 왔을 때 비타의 화면을 터치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순간 어떤 행동을 선택했는 지가 화면에 말풍선으로 표시됩니다. 이는 데몬즈 소울에서 구현한 혈흔과 메시지 같은 방식으로 다른 플레이어와 간접적인 비동기식 멀티플레이와 몹시 흡사한 경험을 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언제 어느 순간에 말풍선을 확인하더라도 "마리와 대화한다"가 1/4 쯤 항상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뭐지 이 마리성애자들은!"하고 생각했었는데, 클리어하고 났더니 초반에 마리 커뮤니티를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성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마리라는 신 캐릭터 자체가 플레이어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한 까닭도 분명 있을 테고요.

(7) 부가 컨텐츠

P3P의 부가 컨텐츠는 아르바이트 말고 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요소가 별로 없습니다. 반면에 P4G는 낚시, 곤충채집, 원예활동 등 제법 구색을 갖춘 미니 게임형 부가 컨텐츠들이 존재합니다. P3P에도 존재하던 영화보기와 같은 이벤트성 컨텐츠도 물론 존재하지만, 전투와 성장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쓴 커피 마시기(스킬 카드를 얻는 용도)같은 요소도 존재하기 때문에 구석구석 꽤 다양한 컨텐츠가 마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수 차례 돌아다니다보면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씩 추가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요소라고 생각되고요. 추측컨데 PSP와 비타라는 기기 자체의 성능 차이, 그리고 저장 매체의 용량 차이 때문에 비롯된 두 작품의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P3P vs P4G: 시나리오

 

시나리오 비중이 높은 게임인 만큼, 다른 게임 디자인 요소와는 별도로 두 작품의 시나리오에 대한 내용을 가급적 스포일링 하지 않는 선에서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페르소나의 사용

P3P에서는 주인공보다도 먼저 페르소나를 구사하는 전문 조직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페르소나 구사 가능자이기만 하면 비교적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인간형 캐릭터로는 PC가 홀로 전투에 참가하고 자기가 가진 다른 악마들을 동료로 소환해서 싸우던 진여신전생 시리즈와 달리 페르소나 시리즈는 시스템상으로 여러 인간형 동료들과 함께 전투에 참가하며 동료들의 페르소나(진여신전생의 악마와 같은)가 고정되어 있고 교체가 되지 않아 대신 PC 자신이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소지하고 교체하면서 전투를 벌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복수의 페르소나 사용자"라는 것을 PC가 갖는 다른 동료들과의 차별성이라고 시나리오에서 직접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P3P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4G에서는 주인공이 가장 먼저 페르소나라는 능력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 페르소나라는 주제를 좀 더 캐릭터와 밀접하게 연결지어 "내적갈등을 극복한 캐릭터는 페르소나를 얻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P4G의 모든 동료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그에 따라 서로 다른 내적 갈등을 가진 상태로 등장하는데요, 내적 갈등으로 인해 캐릭터별 던전의 테마가 구성되고 그 끝에선 PC 일행의 도움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페르소나를 얻어 새로운 동료가 되는 방식입니다. 이처럼 동료들의 페르소나 각성이라는 이야기를 좀 더 몰입감 있고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는 점은 P4G의 장점이라고 생각되지만, 반대로 주인공 본인의 페르소나 습득 경로와 복수의 페르소나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은 게임 내에서 설명해주지도 않고 동료들이 전혀 언급하지도 않는다는 점은 P3P에 비해 다소 아쉽다고 생각됩니다.

(2) 전투 배경

P3P에서 PC 일행이 전투를 벌이는 배경은 매일 자정 열리는 "시간의 틈"입니다. 시간의 틈이 열리면 페르소나 구사자와 쉐도(적) 그리고 쉐도에게 포획될 시민들만 깨어있는 상태로 돌아다닐 수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민은 시간의 틈이 열릴 때 있던 곳에 세워진 관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간의 틈이 열렸을 때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면 낮이나 저녁에는 사람들이 서 있던 장소에 관이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틈에서 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깨어있는 일반 시민은 쉐도에게 사로잡혀 타르타로스(시계탑)에 갇히게 되는데 이 때 붙잡힌 것은 시민의 영혼과 같은 존재고 실제 육체는 시간의 틈이 열렸을 때의 장소에 남아 넋이 나간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이를 "좀비화"라고 부르며 전국적으로 이상한 현상이 확산되는 것을 매스컴에서 기사화 합니다. 사실 시간의 틈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것들을 설명하기가 편해지는데요, 주인공 일행의 활약을 주변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점이라거나, 주인공 일행이 한참을 전투해도 실제 시간이 흐르지 않아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진 시간차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이 이 설정의 장점이라고 생각됩니다.

P4G에서 PC 일행이 전투를 벌이는 배경은 브라운관을 통해 입장하는 "TV 속 세계"입니다. 안개가 자주 끼는 시골 마을에서 비오는 날 자정에 TV를 보면 누군가 희미하게 보인다는 괴담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안개낀 날 안테나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일련의 살인 사건이 어떤 연관점이 있다는 전개가 펼쳐지고, 사망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비오는 날 심야 TV에 나타난다는 것을 PC 일행이 알아차리면서 PC가 우연히 TV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P3P의 페르소나 구사자들은 선천적으로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설정이 배경에 깔려있었던 데 반해, P4G에서 어떤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인물들이 TV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사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데 대부분 몰라서 안하는 건지가 명쾌하게 설명되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PC 일행이 TV 속에 들어간 순간에도 현실 세계의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현실 세계에서는 그 인물이 실종되는 것으로 처리됩니다. 실제로 사건 피해자들 또는 동료가 되는 인물들도 실종 사고가 먼저 벌어진다는 것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 TV를 통해 출입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험성 등이 거칠게 다뤄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P4G의 "TV 터널"이라는 개념이 우주 과학에서 "웜홀"로 이어지는 평행 우주의 존재와 거의 흡사한 개념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각각의 TV 브라운관과 연결된 통로가 TV 속 세상 곳곳에 있어서 같은 TV로 들어와야만 같은 장소로 들어올 수 있다는 설정이 꽤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TV라는 소재를 인터페이스 디자인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UI 디자인에 있어서만큼은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부분도 훌륭하지만 네러티브 전달을 충실하게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디자인 요소로 꼽고 싶습니다. 특히 인게임 밖에서 다루는 OST, 특전 영상, 번외 퀴즈 게임 등과 같은 요소들을 본편 게임과 함께 "TV 편성표"로 표현했다는 점이 굉장히 멋지게 느껴집니다.

(3) 결말의 스케일

결말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한 스포일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네요. 그래도 최대한 덜 들춰내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P3P는 타츠미포트 아일랜드라는 특수시설같은 어떤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마치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 "소용돌이"처럼 각각의 요소가 커다란 흐름을 갖고 결말까지 이어지는 전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츠미포트 아일랜드라는 배경과 중세로 치면 영주 쯤 될 법한 섬의 대부호 가문과 페르소나의 능력과 쉐도의 정체와 전투의 배경이 되는 타르타로스와 이야기 중후반 부에 동료로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의 존재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스케일로 결말이 짜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우뚝 솟은 시계탑과 자정마다 열리는 타르타로스는 인간의 그릇된 욕심에서 만들어진 바벨탑을 상징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결말 부분에서 연결되게 되고요. 또한 PC와 가까운 주요 동료 캐릭터들에게 결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반전 요소들이 있어 캐릭터와 극의 전개가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P4G에서는 각각의 요소들과 결말로 흐르는 실제 이야기의 흐름과 다소 연결 고리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결과적으로 인류 전체의 욕망을 다뤘던 P3P와는 달리, P4G에서는 어떤 한 인물의 그릇된 가치관과 사사로운 욕망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말부에 가서는 판타지 설정에서 쓰이는 대마왕 같은 절대적인 이계의 존재가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의 연결이 인과 관계를 갖고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원래 벌어질 일이었는데 마침 얘 때문에 지금 일어났다"는 다소 헤프닝에 가까운 전개로 이어지는데요. 반지의 제왕 세계에서 드워프들이 실수로 발록을 깨운 것처럼 인간의 실수로 절대적인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는 P3P의 방식보다는 인과 부분에서 아쉽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를 뒤집는 어떤 반전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A인 줄 알았는데 B인가? B인 줄 알았는데 C인가? 아니면 범인이 누구지? 같은 인물에 대한 반전이 들어있어 사실 반전이라기보다는 탐정물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실제로 동료 중에 "탐정"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스케일과 인과 관계에 있어서는 P4G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대신(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후반부의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엔딩의 분기가 존재합니다. 흔히 말하는 해피 엔딩/베드 엔딩 또는 진 엔딩과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5. 마치며

 

다 써놓고 돌아보니 "본격 P4G 까는 글"처럼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합니다만, 사실 P4G가 재미없다는 게 아니라 P3P를 기대했던 제게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구석이 있다는 것이고 P4G 자체는 정통 페르소나 시리즈의 최신작에 걸맞은 퀄리티와 재미를 보장하는 작품입니다. 고교 시절의 추억이 있거나 아니면 한국과 일본 만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학원물을 좋아하거나 턴제 전투와 수집을 좋아하는 JRPG의 팬이라면, 분명 많은 분들이 즐겁게 플레이하실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실 P3P에서 P4G로 변화된 가장 큰 흐름은 "캐쥬얼화" 입니다. 이야기의 배경과 전개나 클래식한 전투 요소와 같은 여러모로 어둡고 다소 마이너 또는 매니악할 수 있던 P3P의 것들을 많이 덜어내고 축약하고 밝게 가꾼 모습이 P4G라고 생각됩니다. 매직 더 개더링 시리즈의 깊이 있는 게임 플레이를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을 법하게 경량화한 블리자드의 카드 게임 하스스톤과 디자인의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위에 쓰인 표현들 대부분이 객관적인 분석 보다는 제 경험을 추적한 감상적인 표현들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은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성향과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둘을 모두 플레이해보지 못한 플레이어들에게 "아 두 게임은 이런 차이가 있구나" 정도의 정보를 줄 수 있다면, 사실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혹시라도 아직 플레이 못 해보신 분들께 페르소나 시리즈를 꼭 한 번 플레이 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그럼 모두들, Let's PERSONA!!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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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F에 작성했던 포스팅을 블로그로 옮겨 봅니다.

GDF 원문 주소: http://gdf.inven.co.kr/t/topic/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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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 SNS에 이런 글을 남겼었습니다.

> "듀랑고의 자원 회수" 건에 대해 신묘하고 확고한 아이디어가 있지만, 프로그래밍 지식이 부족해 창피를 당할까 염려도 되고 트위터 여백도 부족하니 적지 않기로 한다.
(원문링크: https://twitter.com/zerasion/status/494380401666703360)

스레드에서 많은 분들이 의견을 피력해주셨지만 신비주의라거나 거창하고 엄청난 아이디어라서 말씀을 안드린 건 아니고 단지 제가 어제 마감을 치느라 자정까지 혹독한 일감을 치러내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말씀을 못드렸던 것이니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달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흑흑)

사실 shotbyshot 님과는 개인적으로 이 방안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고, 당시에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만.. (훌쩍) 생각했던 내용을 온전히 전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다른 내용들을 더 보강해 보았고 그 내용을 지금부터 풀어내볼까 합니다.

우선 두 가지 방식으로 이 건에 대해 접근해 보았습니다.

첫째, 시스템 구조적인 접근.

논리적으로 자원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둘째, 사용자 경험적인 접근.

심리적으로 사용자의 자원을 회수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먼저 듀랑고의 자원 구조에 대해 NDC 2014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듀랑고의 자원은 "에너지"라는 단위로 크게 묶여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위 "닫힌 계"라고 불리는 완전한 순환을 지향하는 에너지 순환 구조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 플레이어가 계속해서 시스템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자원을 축적시키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플레이어에게 제공되었던 자원은 다시 시스템에게 반납되야하는 대상으로 취급됩니다. 일반적인 인플레이션 경제 체제를 도입한 많은 온라인 게임들에서 사용하는 "경제 하수구"라는 개념과는 그 목적이 유사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대체 자원을 회수하는 것이 아닌, 발급한 자원 자체를 다시 회수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되는데요.

첫째, 시스템 구조적인 접근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키워드로 사용하고 싶었던 것은, 위 인용구의 원문 링크 스레드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어음 발행'입니다. 하지만 어음 발행에 대해 제가 이해하고 있는 바가 정확치 않을 수도 있으니, 그냥 참고 정도만 해두시길 바라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목표는 이렇습니다.

 - 자원이 쌓이지 않고 계속 순환되게 한다.
 - 접속 중이 아닌 플레이어의 자원도 회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제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 자원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정보는, 클라이언트에서 처리하기 위험할 수 있다. (변조 위조 등의 이유)
- 따라서 이 정보는 서버와 DB를 통해 관리될 필요가 있다.
- 접속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데이터를 직접 변경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움(또는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 부분을 타개해보고자 했습니다.

1. 자원 생성(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넘겨주는) 시점에 소멸(시스템이 플레이어로부터 돌려 받는) 시점을 함께 발급한다.
듀랑고의 자원 생성은 순수한 Create가 아니라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플레이어에게 넘겨주는, 일종의 소유권 이전과 같다는 해석을 했었습니다. 이 해석은 저의 다른 글인 [가죽 장화를 통해 추리해 본 듀랑고식 아이템과 가공](http://gdf.inven.co.kr/t/topic/409)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레시피라는 가공 방식을 생성 시점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에, 이같은 정보를 태그해두는 것이 가능한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 한 번 발급받은 소멸 시점은, 재가공 시 또는 직접적인 해당 자원의 연장을 통해 갱신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템의 가공 단계와 무관하게 최초 원재료가 생성된 시점에 이후의 자원 생명이 연계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활성화 된 자원을 파악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갱신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소멸 시점을 갱신하지 않은 상태로 소멸 시점이 도래하면, 해당 자원은 "회수 대상"으로 판단한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큰 따옴표로 구분한 "회수 대상으로 판단한다"는 표현입니다. 이 부분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태 모두의 플레이어에게 유효하게 대응하기 위한 핵심 방안입니다.
먼저, 온라인 플레이어의 경우는 이미 서버와 클라이언트가 접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즉시 자원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이미 다른 많은 게임들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깊게 논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오프라인 플레이어의 경우는 온라인의 경우처럼 즉시 회수되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앞서 전제했던 조건들 중 세 번째인 "접속하지 않은 플레이어의 데이터를 직접 변경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움(또는 위험)이 따른다."라는 부분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프라인 플레이어의 경우는 즉시 회수하지 않습니다. 다만 시스템 입장에서 "회수 대상"으로 분류하고, "잠정적 회수 자원"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회수할 시점은 해당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이며, 소멸되는 아이템을 가진 많은 F2P 게임들이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깊게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 회수 대상으로 판단되는 자원은 그 즉시 시스템에 자원을 돌려준다.
사실 돌려준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플레이어에게 마이너스(-)한 자원량만큼, 시스템에게 플러스(+)한다라고 나누어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역시 오프라인 플레이어의 자원 때문인데요. 온라인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에게서 빼고, 시스템에 더하는 것을 즉시 수행할 수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플레이어의 자원은, 위 3.번 과정에서 "즉시 빼지 않을거다"라고 정했었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회수 대상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에 어차피 그 것은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시스템에 자원을 더한다"는 점입니다. 이 방식은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받을 자원을 담보로 일종의.... 자원 가불 또는 대출한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창고에 막대한 자원을 쌓아두고 사라져버린 휴면 플레이어 때문에 시스템이 자원 총 량이 묶이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창고에 자원이 있건 없건, 소멸 시점이 지나 회수 대상으로 분류됐다면 시스템의 자원량은 회복될 테니까요. 하지만 이 부분에서 조심스럽게 다뤄야할 부분은, "그래서 그 창고지기가 실제로 게임에 접속해서 자원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실제 게임 내 자원 총 량은 초과 상태이다"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전체 자원량을 계산하지 않고, "가용 자원"만을 계산한다면, 회수 대상 자원은 이미 가용 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자원의 융통에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예상보다 말이 몹시 길어진 것 같아 죄송스럽습니다. 역시 글을 짧게 쓰는 재주는 일단 제 것은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흑흑)

다음으로 사용자 경험적인 접근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우려되는 부분은, 많은 분들도 예상하시겠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게임이 내 자원을 뺏어간다."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미 많은 플레이어들이 기존의 다른 게임들로부터, "캐릭터와 장비는 영구 자산이다"라는 RPG의 문법이 학습되어 있기 때문일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플레이어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의 인식을 어디로 바꿀 것인가?라는 부분에 대한 제 해법은 이렇습니다.

"(듀랑고의)장비는 원래 소모품입니다, 고객님."

이에 대해 몇 가지 다른 게임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1. EVE Online
제가 순환과 자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게임이 있지요. 네, EVE 온라인 입니다. 이 게임의 굉장한 매력 중 하나가 바로 플레이어에게 기존 문법을 새 문법으로 교정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 있는데요. 바로 "당신이 가진 모든 것(부품, 함선, 심지어 캐릭터조차도)은 소모품입니다."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RPG 게임에서 PvP 컨텐츠를 플레이하려면,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장비들을 동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겠죠. 하지만 EVE 온라인에서는 "전투에 나가면 모두 소비될 것이다"라는 걸 이미 플레이어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소비되도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규모(그 규모는 각자의 재정력에 따라 다르겠지만)의 부품과 함선들로 전투에 참가합니다. 부수적으로는 이와 같은 이유로 낮은 등급의 자원들에서도 끊임없이 수요/공급의 순환이 이뤄진다는 이점이 있지만 이 스레드에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2. Minecraft
그리고 로그라이크인듯 로그라이크아닌듯 로그라이크같은 썸을 타는 게임이 하나가 있는데요, 세계적으로 인디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마인크래프트(Minecraft)가 그것입니다.
마인크래프트에서는 캐릭터가 사망하면 아이템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리고 경험치가 전부 날아가는 그야말로 로그라이크같은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마인크래프트에 경험치가 있었다고?같은 소소한 발견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경험치를 뭐에 쓰는 지는 저로선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그라이크가 아닌듯한 냄새는 "마인크래프트에서 중요한 건 레벨과 자원이지 캐릭터나 장비가 아니잖아?"라는 부분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두들 아시겠지만, 마인크래프트의 장비(전투 장비 말고 채집 장비요)는 모두가 소모품이죠. 그래서 서바이벌 모드에서 삽질을하고 곡괭이질을 하는 모든 행위를 할 때, 많은 분들이 한 번에 여러 벌의 도구들을 만들어서 인벤에 담고 작업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때 장비 내구도가 다해서 소모되었다고 해서 "시스템이 내 자원을 뺏어갔어!"라고 느끼는 분은.. 없다곤 못해도 많진 않으시겠죠?
(물론 캐릭터나 장비는 소모품으로 인지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레벨과 자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인장 괴물 같은 게 내 피와 땀으로 빚어낸 소중한 건축물을 파괴시키면.. 음... 네. 애도해드려야죠.)

3. Diablo lll (Hardcore)
현 세대에서 로그라이크란 꽤 매니악하고 클래식한 취향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저한 로그라이크 게임이 로그라이크가 성행하던 레트로(..?) 시절에 비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지의 메이저 개발사 블리자드에서 로그라이크"만"을 제공하진 않았지만, 로그라이크"도" 제공해준 게임이 있었으니,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실 디아블로 시리즈가 그것입니다. 2편부터 3편까지 이어진 이 "하드코어 캐릭터"라는 모드는 캐릭터에게 유일성의 생명을 부여하고 있는데요, 이 덕분에 영원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고통받는(?) 스탠다드 캐릭터에 질린 매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은 하드코어 캐릭터를 열심히 육성하고 있지만, 사실 3편 오리지널까지만 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쉽게 진도를 나가진 못했습니다. (오리지널 당시에는 일반-악몽 난이도를 클리어하는 정도에서 멈췄지만, 확장팩 적용 이후에는 최고레벨 캐릭터를 두 개 육성했습니다.) 하지만 2.0 패치와 확장팩 컨텐츠를 통해 이같은 죽음에 대한 완화 장치들을 다수 마련해놓았고, 캐릭터의 "재육성"에 대한 부분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덕분에 용기를 내서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가장 큰 심리 저항 완화 장치는 아무래도 "정복자 시스템"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전에는 각 캐릭터마다 별도의 정복자 레벨이 적용되면서, 단지 60레벨 이후의 추가 성장이라는 "더 깊은 육성 요소"로만 동작했었습니다. 덕분에 높은 정복자 레벨의 캐릭터일 수록, 사망 시의 충격 또한 컸고요. 하지만 개편된 정복자 2.0 시스템은 계정 내 같은 모드(스탠다드/하드코어)의 모든 캐릭터가 공유하는 "계정 성장 요소"가 됨으로써 캐릭터가 사망해도 유의미하게 남길 수 있는 요소와, 재육성 시 직접적으로 부스트해주는 요소로 멋지게 동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리지널 시절부터 유지되는 공유 요소로는, 창고와 장인 레벨이 공유되기 때문에 완전히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정도까지 플레이어를 내던지지는 않습니다.
디아블로3의 하드코어 모드로 이어지는 시스템의 연계 흐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저의 다른 글인 [디아블로3의 완성, 2.0 패치 살펴보기](http://gdf.inven.co.kr/t/3-2-0/393/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위의 세 게임들을 예시로 꼽으면서, 제가 정리한 "플레이어의 인지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목표: 플레이어로부터 "장비는 소모품"이라는 인지 변화를 이끌어낸다.
- 방법1: 손쉬운 복구를 지원한다.

예를들어, 이브온라인의 경우는 플레이어 본인이 쉽게 복구할 수 있는 정도의 자원만 소비하는 형태로 우선 제어가 됩니다. 그리고 일단 그것을 복구하는 과정 자체는 앞서 설명드린대로 낮은 단계의 물건들도 수요/공급 순환이 꾸준하기 때문에 본인이 자본만 있다면 복구하는 절차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인크래프트의 경우, 레벨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 변화를 "손쉽게 도와주는 것"이 도구일 뿐이지 도구가 없다고 전혀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맨손으로 흙도 파고 나무도 베고 돌도 캘 "수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설치된 작업대와 약간의 재료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무나 돌로 된 도구들은 복구할 수 있어 부담이 적기도 합니다.
디아블로의 경우도, 계정 간 승계되는 정복자 포인트라는 성장 포인트와 창고를 통해 사용 가능한 고단계 보석 등을 통해 생짜 1레벨 캐릭터보다 훨씬 강력한 캐릭터를 세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높은 난이도의 플레이를 통해 빠른 성장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듀랑고에서도 회수된 자원을 다시 복구하는(완전히는 아니고 어느 정도까지는) 과정이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게임이 제공하고 있다면, 방법1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방법2: 소멸하지 않는 것을 분리한다.
이브온라인은 아바타 클론이 없다면 그야말로 태초의 상태로까지 돌아갈 수 있는 잔인한(..) 시스템이므로 소멸하지 않는 무언가는 생각나지 않아 제외하겠습니다.
마인크래프트에서도 결국은 모든 것이 소멸 가능한 것들이긴 하지만(뎀! 선인장 괴물!), 장비와 캐릭터가 소멸된다고 해도 내가 변화시켜둔 레벨은 레벨에 어떤 변화가 가해지지 않는 이상 캐릭터의 사망과는 전혀 별개의 요소로 존재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사망과 장비의 소멸이 별로 신경쓰이는 요소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디아블로3의 정복자 포인트 때문에 이 항목을 언급했다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가령 예를 들어서 듀랑고에서 퍼머데스(Permanent Death;영원한 죽음)를 적용한다 할 지라도 계정 단위의 어떤 누적 성장 요소가 있다거나, 하우징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보존된다거나 하는 장치가 구비되어 있다면, 더 중요한 요소가 존속된다는 안도감으로 덜 중요한 요소가 소멸되는 것에 플레이어의 관심이 쏠리지 않게 이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써놓고보니 이건 러스트(Rust)에서 좀 더 투박한 형태로 지원하는 방식이기도 하네요.(역시 폴리곤 마인크래프트!)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흔한 RPG 게이머들이, 인벤토리에 물약을 200개 쯤 쌓아놨다가 보스 전투 중에 몽땅 다 써버렸다고해도, 모든 걸 잃은 것처럼 허망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약은 원래 쓰라고 있는 소모품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테니까요. 소모품이 소비되어 없어지는 것을 전혀 이상하지 않게 인지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비는 왜 영원 불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심지어 리니지 시리즈에서는 강화에 실패해 소멸되는 장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 백 기에 달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분노하게 될까요?
저는 이 부분은, "그 게임 사회가 바라보는 장비의 가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자주 소비된다고 해서 그것을 소비되는 것이 당연한 소모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이 개발자로부터 의도된 그리고 부여된 아이템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리니지 시리즈의 경우는, 그런 아이템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이 처음부터 의도된 게임이기 때문에 숱하게 소비되는 장비라 할 지라도 항상 소멸될 때마다 슬퍼하거나 분노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장비가 소모품이니까 낮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당연히 귀하고 높은 가치를 지닌 장비가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랑고에서)장비라는 것은 소모품이다"라고 인지될 수 있는 일종의 정책적인 밸런싱 기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상합니다.
어떤 방법들을 통해서 좀 더 오랫동안 상하지 않게 처리할 수도 있죠.
그리고 개중에는 값비싼 음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값비싼 음식이라고 해서, 영원히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듀랑고의 장비에게도, 이와 같은 방법을 적용시켜보면 성공적으로 저항감 낮게 자원을 회수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글이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염치불구하고 여러분의 많은 스레드 참여를 부탁드리면서 또 기대해 봅니다. (꾸벅)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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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굴단 서버의 호드였기 때문에 통합전장군 중에 "징벌의 전장"에 속해 있었기에 전장에 가면 같은 전장군에 속한 다른 서버 형들(전장에서는 상호 호칭이 형이었다)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서버의 플레이어들과 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신기했었고, 이제까지의 필드쟁이 아닌 공식 컨텐츠로서의 대규모 PvP를 처음으로 접해보던 것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흥분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당시에는 왜그런지 몰랐는데, 어느 전장을 가나 "아즈샤라 서버" 형들은 무척이나 강했었다. 그리고 대체로 퉁명스러웠고 다른 호드들을 못마땅해했다.
지금에야 그게 용개(DrakeDog)의 여러가지 영향 때문에 만들어진 성격이라는 걸 알게됐지만.
특히나 소규모로 구성되고 전투 의존도가 무지막지하게 높은 전쟁노래협곡(노래방)의 깃발전에서는, 판금탱커 클래스가 아니더라도 "아즈형들이라면 기수를 할 수 있어"가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마법사나 흑마법사처럼 방어력이 약한 천클래스도 기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아즈샤라 호드야 지금도 자긍심 높고 전투력 높으니 후략하기로 하고, 다른 인상적인 동네 형들이 있었다면, 역시 "노르간논 형제들"이 생각난다.
호칭에서부터 형들 아니고 형제들인 것이 큰 특징인데, 이들은 개인전력도 좋지만 조직력이 뛰어났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노르간논 서버는 당시 최고 수준의 정규 및 막 공격대를 운용하던 곳이었고, 그들이 전장을 뛰던건지 아니면 서버 문화가 그런건지 팀 단위로 동시 신청(지금은 안되지만)해서 아라시나 알터랙 전장에 자주 출몰했다.
덕분에 주위를 둘러봤을 때, "노르간논 멤버가 다섯 이상이라면 그 판은 승률이 90%에 육박한다"라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 파티가 별동대처럼 적소에 나타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개중에는 뛰어난 지휘관이 판 전체를 움직이기도 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이처럼 "어느 서버 출신"이라는 태그가 플레이어 네러티브에서 유의미하게 동작할 수 있다는 걸 실제로 경험했다는 부분 때문이다.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라는 게, 가상 공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더란 옛 이야기.

 


WRITTEN BY
zerasion
디자이너의 의도는 플레이어의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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